조선일보 2024. 10. 1. 00:04
어둑한 가을밤, 갑작스레 천둥 번개가 내리치며 비가 쏟아진다. 허리에 뿔피리를 찬 목동과 속이 훤히 비치는 하늘하늘한 드레스를 입은 아름다운 아가씨가 겉옷을 우산 삼아 비를 피해 황급히 달린다. 하늘을 올려다보는 아가씨의 눈동자에는 불안이 가득한데, 그런 그녀의 얼굴에서 눈을 뗄 줄 모르는 목동은 지금 비가 오는지 눈이 오는지 분간할 틈도 없이 그저 행복에 젖었다.
19세기 말, 프랑스 아카데미 화풍을 이어받은 화가 피에르 오귀스트 코트(Pierre Auguste Cot·1837~1883)는 1880년 이 작품을 파리 살롱에 전시했다. 눈 높은 평론가들은 진부하다 혹평했고, 또 다른 평론가들은 과연 이 남녀가 당시 유행하던 프랑스 소설의 주인공들인지, 아니면 고대 그리스 서사시의 주인공들인지 갑론을박했다. 하지만 대중들은 낭만적이고 비현실적이면서 은근히 선정적인 이 그림에 열광했다.
코트에게 ‘폭풍우’를 주문한 건 미국 컬렉터 카트린 울프였다. 부모로부터 요즘 가치로 4000억원에 달하는 재산을 물려받은 그녀는 수많은 학교와 박물관, 자선단체에 기부를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의 이름이 널리 알려진 건 ‘폭풍우’를 비롯한 미술 컬렉션을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 기증한 다음이었다.....때 아닌 비가 온다며 혀를 차면서도, 설렘이 쉬이 가시지 않는 건 19세기나 21세기나 변함이 없다.
https://v.daum.net/v/20241001000430113
[우정아의 아트 스토리] [550] 폭풍우를 뚫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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