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메일 한 통을 받았다. 대학생이라고 했다.
진로에 대해 고민하던 중에 내 책을 읽었고, 쑥스럽지만 메일을 보낸다고 썼다.
어렵게 낸 만큼 기쁘면서도 허탈한 마음이 가득했던 책이다.
주변의 반응이 기대에 못 미쳐 상실감마저 안겨 주었던 그 책을 기억했다는
사실이 놀라우면서도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여고 시절부터 나는 조금 별난 아이였다. 친구들이 입시 공부에 몰두할 때 언제나 노트에 뭔가
끄적이느라 많은 시간을 보냈다. 잘 이해되지 않는 철학책을 끼고 살았고, 목적지도 없이
몇 시간이고 걷는 것을 좋아했다. 모두 별거 아닌 취미지만 그것들이 없었다면 정말 심심한
인생이 될 뻔했다. 그것이 있었기에 수만 가지 감정이 뒤섞일 때마다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고,
선택의 갈림길에서 헛된 욕망에 휘둘리지 않고 현실에 충실할 수 있었다. 그런 취미의 연장으로 우연히 책을 쓰게 됐다.
한 장 한 장 글을 쓸 때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뚜렷해졌고 세상을 바라보는 폭이 좀 더 넓어졌다.
나이가 들수록 내 취미가 복잡한 세상살이에서 참된 스승이고 구원이라는 사실이 분명해진다.
그 학생은 내게 조언을 구했다.
곰곰 생각해봤지만 답을 준다는 것은 역시 어려운 일이어서 며칠 전에 직접 만났다.
나는 그저 나 자신이 누구이고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게 되는 데 도움이 됐던 취미에 대해 들려줬다.
좋은 직장을 찾아 헤매기보단 평생 사랑하고 즐길 수 있는 소박한 취미를 찾는 것이
삶의 중심을 잡아줄 수 있지 않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삶의 성패를 취미가 판가름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인생은 길고 배우며 즐길 게 너무 많으니 인생 자체를 즐기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