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고전·고미술

[가슴으로 읽는 한시] 낙엽시

바람아님 2014. 11. 24. 09:52

(출처-조선일보 2014.11.24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한문학)


  낙엽시


  천지는 거대한 염색 가게
  환상의 변화를 어쩜 저리 서두를까?
  발갛고 노란 잎을 점점이 날리는 바람
  붉은 꽃과 흰 버들솜에 불어왔었네.
  봄과 가을 번갈아 바뀌어도
  태양은 양쪽 어디에도 머물지 않네.
  공(空)과 색(色)이 뒤집히는 동안
  성큼성큼 세월은 흘러가누나.



  落葉詩


  天地大染局(천지대염국)
  幻化何太遽(환화하태거)
  丹黃點飄蘀(단황점표탁)
  紅素吹花絮(홍소취화서)
  春秋迭代謝(춘추질대사)
  景兩無處(광경양무처)

  空色顚倒間(공색전도간)
  冉冉流年去(염염유년거)


가슴으로 읽는 한시 관련 일러스트


1825년 자하(紫霞) 신위(申緯·1769 ~1845)가 낙엽을 읊은 시 8편을 지었다. 

가을이 되면 천지는 거대한 염색 가게로 바뀐다. 

이 염색 가게에서 갑작스럽게 벌어지는 환상적 변화는 그 속도를 따라잡기가 힘들 만큼 빠르다. 

온갖 빛깔 낙엽을 한 점 한 점 허공에 날려버리는 바람은 지난 봄철 현란한 꽃을 피웠던 바로 그 바람이다. 

그처럼 봄과 가을이 번갈아들며 염색 가게를 차지해도 태양은 스쳐 지나가기만 할 뿐 자취도 주소도 남기지 않는다.

공과 색이 엎치락뒤치락하며 염색 가게를 열었다 닫았다 한다.

세월은 그렇게 흘러간다. 

벌써 염색 가게가 문을 닫으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