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5.02.27 황주리 화가)
요즘은 미세 먼지 탓에 창문 열어 환기도 할 수 없을 때가 있다.
적어도 예전엔 '환기 자제' '외출 자제' 같은 이상한 단어는 존재하지 않았다.
오래 지나지 않아 모든 아파트와 건물들은 창문을 열 수 없도록 설계될지도 모른다.
세상의 비싼 고층아파트나 호텔들처럼. 공기가 이런 추세로 나빠지다 보면 언젠가 우리는 창문이
그저 밖을 내다보기 위한 장식품인 세상에 살게 되지 않을까? 아니 그러다가 우리는 영화
'인터스텔라'에서처럼 지구를 떠나 다른 별로 이사를 가야 할지 모른다.
1980년대 후반, 뉴욕은 거리에서 여자가 담배를 피운다는 건 상상도 못하던 서울과는 너무 다른
신세계였다. 여자가 음식점에서 바에서 거리에서 지하철역에서 그 아무 데서도 담배를 아무리
피워도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 미국은 내게 천국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좋은 세월은 몇 년 가지 않았다.
온 미국에 금연 바람이 불기 시작하더니 음식점에서도 지하철역에서도 심지어는 공원이나 산에서도 금연이라는 표지가 붙었다.
황주리 그림
금연구역과 흡연구역이 나뉘었던 초기 금연시대는 그래도
나았다. 하지만 말만 흡연구역이지 불편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언젠가 맥도널드 흡연구역에서 담배를 피우는데 다섯 살쯤
된 어린아이가 다가오더니 '노 스모킹' 하면서 위협적인
몸짓을 했다. 마치 빨간 완장을 찬 어린 인민군이 "동무,
사상이 불순하오." 그런 소리를 하는 것 같았다.
그 시절 미국의 이데올로기는 금연이었다. 나날이 담뱃값은
비싸졌고, 1990년대 말 나는 담배를 완전히 끊었다.
좀 산다는 나라치고 내 나라처럼 담배가 싼 나라는 어디에도
없었다. 미국에 살던 시절 서울에 올 때마다 공항에서
한국 담배를 가득가득 사가던 기억이 어제 같다.
사랑하지만 백해무익한 연인과 헤어지듯 뚝 하고 담배를
끊은 나는 세상에 태어나 제일 잘한 게 뭐냐 묻는다면,
그림을 그리는 일을 택한 것과 담배를 끊은 일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미세 먼지 때문에 창문도 열지 못하는 날,
담배를 피우는 건 정말 '금상첨화'의 반대말 '설상가상'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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