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5.02.27 정상기 푸른노년문화연구소 대표·각당복지재단 웰다잉 강사)
죽음을 공개적으로 터놓고 이야기하기란 어렵다.
잘 사는 것을 넘어 잘 죽는 문제를 더러 말하지만 더 다가가면 대부분 손사래 친다.
자신의 죽음을 이야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죽음 이야기를 기피하면 할수록 불안은 커지고 죽음의 질은 더 나빠진다.
물론 죽음을 부정·외면·혐오하는 풍조 속에서도 죽음 이야기를 절박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있다.
연세 많은 어르신들이다. 삶을 어떻게 잘 마무리하고 편히 떠날 수 있을까 막막하고 불안한데,
가족과는 의논하기가 어렵다. '쓸데없는 생각을 한다'고 타박이나 받는다.
그러다 보니 많은 어르신이 가정 밖에서 죽음 강의를 듣는다.
마지막 마무리와 떠남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 보고 싶어서다.
사전의료의향서 작성 운동을 하는 민간단체 사무실에는 온종일 전국에서 걸려온 노인층의 전화가 끊이지 않는다.
물어물어 일부러 찾아오기도 한다. 직접 강의를 들으려는 어르신들은 처음에는 무척 긴장한다.
그러나 강의가 진행될수록 표정이 밝아진다.
상속과 유언 시간에는 한숨 소리가 높지만, 사전의료의향서 시간에는 안도의 표정을 짓는다.
그러나 이 정도의 죽음 교육만으로는 부족하다.
인생의 마지막 도달점은 죽음이다. 사람들은 그 죽음 앞에서 좌절한다.
그러나 죽음의 질이 높은 나라일수록 일찍부터 학교에서 죽음을 가르친다.
가정에서도 죽음 이야기를 숨기지 않는다. 이 과정에서 건전한 인식이 자연스럽게 형성된다.
반면 우리나라에는 이런 인식을 형성하는 틀이 없다.
가정은 말할 것도 없고 학제에도 죽음은 빠져 있다. 심지어 의과대학조차 그렇다.
노년에 듣는 죽음 교육 효과는 제한적이다. 그렇다고 죽음 교육을 멈춰서는 안 된다.
그나마 죽음에 대해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거의 유일한 통로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죽음을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까?
지난 삶에서 긍정적 의미를 찾을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언젠가 떠날 자신에게는 여한이 없게, 남는 가족에게는 그의 아름다운 뒷모습이 기억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신변과 관계와 소유를 정리하고, 예기치 못한 몸의 상태에 대비하도록 해야 한다.
죽음을 준비하더라도 남아 있는 삶의 시간은 여전히 소중하다.
지난 삶에 만족하지 못할수록 남은 시간은 더 금쪽같다.
삶의 가치를 높이는 적절한 동기부여라면 더 좋을 것이다.
다만 이 모든 일은 정직한 삶의 고백이어야 한다. 가장 밑바탕이 되는 덕목은 죽음에 대한 성찰이다.
내 죽음 자리를 살피고 그 자리에서 나의 오늘을 바라보아야 한다.
앞서 산 사람과 동시대 다른 사람들의 죽음에 대한 사유와 지혜도 학습해야 한다.
사는 동안 조우한 다른 사람들의 죽음을 되새기며 그 죽음이 내게 끼친 삶의 의미를 함께 깨달을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마침내 내 죽음 문제를 사색하고 성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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