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國際·東北亞

[현장에서] "아베, 역사 직시 못해" → "난제 제쳐두자" … 중·일은 해빙기

바람아님 2015. 4. 24. 10:06

[중앙일보]  2015.04.24 

“서로 상처 주면 손해” 변화 체감
과거사·협력 ‘투 트랙’으로 전환
“한·일 관계 직구로만 할 필요 없어
한·미·일 3국 협력 커브도 필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22일 정상회담은 의외였다. 한국 외교부는 하루 전까지만 해도 두 나라가 30분이라는 ‘긴’ 정상회담을 할 거라곤 예견하지 못했다. 아시아·아프리카 정상회의인 만큼 간단한 조우 정도는 있을 수 있다고 봤다. 하지만 중·일 사이에 부는 훈풍을 기자는 지난 20일 중국 본토에서 이미 체감했다. 한·중·일 3국 협력사무국(TCS)이 주최하는 3국 기자단 교류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베이징을 방문해 훙량(洪亮) 중국 외교부 아시아대양주국 부국장을 만난 자리에서다.

중·일 관계에 대해 묻자 그는 망설임 없이 “중·일이 서로 상처를 주면 해가 될 뿐”이라고 답했다. 지난해 4월 3일 그는 한·중·일 관계 악화를 말하며 “일본 지도자가 역사를 직시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일갈했었다. 감정 담긴 발언에 일본 기자들이 “적절치 못하다”고 반박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그랬던 훙 부국장은 1년 만에 달라졌다. 한·일 관계에 훈수까지 둘 만큼 변심했다. “중·일과 한·일 간에는 해결할 이슈가 많지만 해결하기 힘든 것은 잠시 제쳐두는 지혜도 필요하다. 할 수 있는 것만 하고 상처 주는 일을 하지 말아야 한다. 해결이 힘든 일을 해결하려 하면 국가 관계에 금이 가고 협력 기회를 잃게 된다.”

  변한 건 중국 외교부만이 아니었다. 21일 중국 외교학원에서 만난 국제관계연구소의 저우융성(周永生) 교수는 “언론에서 ‘아베 총리가 군국주의로 가고 있다’고 하는데 사실 정확한 건 ‘아베 총리에게 군국주의 경향이 있다’는 것”이라며 “이는 완전히 다른 건데 상대 국가에 대해 확연히 이해하지 못하고 보도한다”고 했다. 지난해엔 일본의 역사 왜곡을 비판하며 삿대질까지 했던 그다. 다른 교수들도 “한·중·일 간 협력이 잘되는 게 많은데 언론은 왜 부정적인 면만 부각시키느냐”며 기자들을 타박했다.

 일본을 대하는 중국의 태도가 과거사 갈등과 협력을 분리해 대응하는 투 트랙 전략으로 명확히 돌아섰음을 체감할 수 있었다. 일본도 그걸 느낀 것 같다. 프로그램에 함께한 일본 기자는 “지난해 11월 중·일 정상회담 이후 양국 분위기가 확연히 좋아지고 있다. 취재 현장에서 이를 체감한다”고 했다.

 반면 한·일 관계로 화제가 옮겨가면 결이 다른 얘기들이 나왔다. 지난 16일 도쿄에서 만난 일본 외무성 고위 당국자에게 최근 발표한 일본 외교청서에 ‘한국과 기본적 가치를 공유한다’는 표현을 왜 삭제했느냐고 물었다. “외교청서는 총리 연설 등을 바탕으로 정기적으로 수정하게 돼 있다. 어찌됐건 한국이 일본과 마찬가지로 미국의 동맹국이란 인식엔 변함없다.” 성의 없는 답변 중 ‘어찌됐건’이라는 단어가 목 안에 가시처럼 박혔다.

 한국 외교는 그동안 미·중 대결, 중·일 갈등 등 주변 강대국들이 대립하는 상황에서 전략적 공간을 확보해왔다. 서로 한국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려는 상황을 즐기며.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말한 “미·중의 러브콜은 축복”이 그런 거였다. 하지만 중·일 관계 개선은 이런 즐거움에서 한국이 깨어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한 전문가는 “중국은 한·미·일 삼각구도를 깨려고 한국을 끌어당기려 한 것인데 일본과 관계가 좋아지면 한국의 효용가치는 확연히 떨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금이야말로 진짜 외교, 창조하는 외교가 필요한 때가 온 것이다. 한·일 관계를 직구로만 다룰 필요는 없다. 한·중·일, 한·미·일이라는 3국 협력 등을 활용한 커브도 구사할 수 있어야 한다.

 이홍구 전 총리는 23일 한·미·일 3국 기자들에게 이런 얘기를 했다. “한·중·일 30인회의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첫 회의 장소를 정하는 데 1분도 걸리지 않았다. 모두가 서울을 원했다. 일·중 간에 어려운 문제가 있으면 항상 한국에 이야기를 한다.”

힌트의 출발이다. 한국이 주도권을 쥘 수 있는 외교 선택지는 분명 있다.

유지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