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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리포트] 영국과 프랑스의 엇갈린 外交 행보

바람아님 2015. 4. 26. 08:52

(출처-조선일보 2015.04.23  이성훈 파리 특파원)


	이성훈 파리 특파원 사진

지난 18일 프랑스 대서양 연안의 섬 액스(Aix)에서 목선(木船) 에르미온(Hermione)이 미국을 향해 출발했다. 

에르미온은 1780년 프랑스 군인 라파예트가 미국 독립전쟁에 참가하기 위해 타고 떠났던 배다. 

라파예트는 조지 워싱턴을 도와 미국이 영국으로부터 독립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1790년대 바다에 

좌초돼 사라졌던 에르미온이 200여년 만에 전통 방식 그대로 복원돼 이날 대서양 횡단에 나선 것이다.


의례적 역사 재현으로 끝날 수도 있었던 이날 행사는 최근 미국·프랑스·영국 3개국의 미묘한 관계와 맞물려 

시선을 끌었다. 

한때 '미국의 푸들'이라는 조롱을 받았던 영국이 요즘 미국을 대하는 태도는 예전과 확연히 다르다. 

지난달 G7(주요 7개국) 가운데 가장 먼저 미국의 반대를 무릅쓰고 중국 주도의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에 참가했다. 

2013년에는 화학무기를 사용한 시리아의 알 아사드 정권에 대한 미국의 공습 요청을 의회 반대를 이유로 거부했다. 

반면 사사건건 대립했던 미국과 프랑스의 관계는 최근 들어 역대 최고라는 평가를 받는다. 

에르미온 출항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것이다.

그동안 프랑스는 국제 무대에서 미국의 발목 잡기 역할을 자임해 왔다. 

드골 대통령은 미국의 대변자라는 이유로 영국의 유럽경제공동체(EEC·유럽연합의 전신) 가입을 반대하고, 

핵무기를 독자 개발했다. 시라크 대통령은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면서 참전을 거부했다. 

하지만 프랑스는 지난해 미국의 이라크 내 이슬람국가(IS) 공습에 가장 먼저 동참했고, 북아프리카와 예멘 등에 군대를 보내 

이슬람 극단주의자와의 테러 전쟁을 수행하고 있다. 경제 몰락으로 추락한 국제적 위상을 미국과 손잡고 해외에 군사력을 

보내는 것으로 보완하려 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이 영국 대신 프랑스를 '가장 오래된 우방'이라며 치켜세운 것은 다분히 의도적이었다.

반면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요즘 '국제 무대의 단역 배우'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와 IS 소탕 작전, 이란 핵무기 협상을 미국·독일·프랑스가 주도하는 것을 강 건너 불구경하듯 보고만 있기 

때문이다. 

캐머런이 이런 행보를 취하는 데는 그 나름의 이유가 있다. 영국은 미국과 함께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벌인 전쟁에서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인적·물적 손해만 입었다는 자체 평가를 하고 있다.

내달 영국 총선을 앞두고 얼마 전 열린 TV 토론에서도 보수당의 캐머런 총리와 노동당의 밀리밴드 당수 등 각 당 대표들은 

외교 문제를 거의 언급하지 않았다.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이런 영국의 외교 전략 부재를 '소영(小英)제국'이라는 

제목의 기사로 비판했다. 

이런 영국이 요즘 유일하게 공을 들이는 대상은 중국이다. 

캐머런을 비롯한 영국 정부의 주요 인사들이 잇따라 대규모 경제사절단을 이끌고 중국을 찾았다.

이런 영국의 실용적 외교와 프랑스의 적극적 외교의 성적표가 어떻게 나올지는 좀 더 두고 봐야 한다. 

다만 영국과 프랑스처럼 한때 세계를 지배했던 국가들도 이제 미국과 중국의 틈바구니에서 

외교적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는 점만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