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橫設竪設

[설왕설래] JP의 분노

바람아님 2015. 5. 8. 10:00

세계일보 2015-5-7

 

노정객은 아마 며칠 밤을 불면으로 보냈을 것이다. 민족의 분노를 가슴에 새기고 또 새겼다. 일본과의 우호에 정성을 쏟은 그였지만 이번만은 분노를 주체할 길이 없었다.

2001년 봄, 일흔여섯의 김종필(JP)은 자민련 의원들을 이끌고 일본의 요미우리신문사로 쳐들어갔다. '위안부는 전쟁 때 근로를 위해 동원된 것'이라는 사설에 항의하기 위해서였다. 오랜 친구인 와타나베 쓰네오 사장의 방문을 열어젖힌 JP는 "어이, 쓰네오상! 이 글 누가 썼어? 이거 쓴 논설위원들 다 불러와"라고 소리쳤다.

 

잠시 후 편집국장과 논설위원들이 모이자 그는 일본어로 야단치기 시작했다. "당신들, 중일전쟁이 일어났을 때 몇 살이야? 뒷주머니에 허연 수건을 꽂은 일본 군속들이 돌아다니며 '공장에 가서 일하면 돈 벌 수 있고, 좋지 않느냐'고 속였다. 내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다." 노정객의 생생한 증언에 참석자들은 아무 대꾸도 하지 못했다. "어린 여성들을 꾀어 일부만 공장에 보내고 대부분은 위안부를 시켰다. 뭣이 어쩌고 어째! '뎃치아게루(꾸며낸 일)라고?" JP는 내친김에 일본 언론사들을 한 바퀴 돌면서 역사의 진실을 깨웠다.


4년 후 다시 일본을 찾은 JP는 이번엔 지도층 인사들을 꾸짖는다. 그는 정·관·재계와 언론계 1000여 명이 모인 강연에서 가슴속의 울분을 토해냈다. "올해는 고종의 황후인 민비가 일본의 미우라 공사 일당에게 참살된 지 110년 되는 해입니다. 이런 일이 일본 황궁에서 일어났다고 상상해 보시면 한국인들의 분노가 얼마나 깊은지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장내는 쥐 죽은 듯 조용했다. 통렬한 지적에 모두 숨을 죽였다.

JP는 정치 지도자의 분노가 어떤 것인지를 보여준다. 진정한 분노는 민족의 과업을 놓고 용기를 내는 것이어야 한다. 여의도 정치인들은 만만한 '을(乙)'만 국회로 불러 삿대질하고 호통 친다. 촌부의 용기만도 못한 분노다.

사람에 대한 평가는 각자 다를 수 있다. JP도 그렇다. 격동의 시기에 몸이 흙탕물에 젖는 일이 왜 없었겠는가. 위안부 문제 해결에서도 그의 책임은 자유롭지 못하다. 인디언 부족에 이런 격언이 있다. '그 사람의 신발을 신고 걸어보기 전에는 함부로 그를 판단하지 말라.' 오늘따라 JP의 신발을 꼭 신어보고 싶다.

배연국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