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 2015-5-8
무엇을 아무리 얇게 베어내도 거기엔 늘 양면이 있게 마련이다. 투자 귀재 워런 버핏의 ‘두 얼굴’도 마찬가지다. 그는 ‘부자증세로 재정적자를 줄이자’고 주장하거나 재산을 자선재단에 기부하면서 존경받는 부자로 칭송받지만, 사업가로서는 전혀 다른 얼굴을 갖고 있는 모양이다. 엊그제 헤지펀드계 거물 대니얼 로브는 “더 많은 세금을 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도 정작 자신은 세금을 회피하는 위선자”라며 버핏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얼마 전 래퍼곡선(세율이 높으면 전체 세수가 줄어든다는 이론) 창안자인 아서 래퍼도 “버핏의 재산에는 세금이 제대로 부과된 적이 없으며 이 돈이 빌&멀린다 게이츠 재단에 기부되면 앞으로도 세금은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버핏이 세금을 의도적으로 미뤄왔다고 보도했다. 버핏이 설립한 벅셔해서웨이가 납기를 늦춘 법인세 누적액이 600억달러(약 67조원)를 넘었다고 한다. 인프라에 투자하면 세금납부를 미뤄주는 점을 활용해 그런 기업에 집중 투자하고, 그렇게 늦춘 세금으로 다른 곳에서 또 이익을 낸다고도 한다. 지난해에는 캐나다 커피체인을 인수하는 버거킹에 돈을 대면서 합병법인 본사를 캐나다에 두기로 해 비난을 받았다. 캐나다 연방법인세율은 15%로 미국의 35%보다 훨씬 낮다.
거액 기부가 상속세를 회피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지적도 많다. 그는 아들에게 ‘내가 매년 너의 재단에 기부하는 재산이 상속세나 증여세의 대상이 되지 않도록 법적인 조치를 다하라’고 했다. 그런 한편으로는 상속세를 못 내 매물로 나온 회사들을 하나씩 사들였다. 그의 보험회사는 상속세를 회피하기 위한 보험상품을 많이 팔고 있다. 상속세가 그의 장사밑천이기도 한 셈이다. 그러니 ‘정부에 내야 할 세금을 기부라는 이름으로 제 마음대로 쓴다’는 비판이 나올 만하다.
평소에 파생상품을 ‘대량 살상무기’라고 비난하면서 수십억달러를 거기에 투자하는 이중성도 자주 도마에 오른다. 뒤에서 정책 로비까지 벌였다고 한다. 정치자금을 민주당엔 개인 돈, 공화당엔 회사 돈으로 내면서 양다리를 걸친 사실도 밝혀졌다. 그간 버핏의 자금은 월가와 워싱턴에서 깨끗한 돈으로 통했다. 그의 돈이 투명한 시장원리와 현명한 투자원칙의 결실이라고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그렇게만 믿기는 어렵게 됐다. 동전의 양면이랄까. ‘깨끗한 돈(clean money)’과 ‘더러운 돈(dirty money)’은 한끗 차이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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