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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상] 명왕성

바람아님 2015. 7. 16. 09:36

(출처-조선일보 2015.07.16 김기천 논설위원)

1992년 어느 날 NASA 과학자가 원로 천문학자 클라이드 톰보에게 전화를 걸었다. 
톰보가 1930년 발견한 명왕성을 방문하고 싶으니 허락해달라는 전화였다. 
톰보는 "기꺼이 환영합니다. 다만 아주 멀고 추운 여행을 해야 할 것입니다"고 했다. 
그러나 예산 문제 탓에 NASA의 명왕성 탐사 계획은 계속 지연됐다. 
결국 톰보가 전화를 받고 14년이 지난 2006년 초에야 명왕성 탐사선 뉴호라이즌스가 발사됐다. 

▶명왕성은 영어 이름 '플루토(Pluto)'를 번역했다. 
플루토가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저승 세계의 신'이어서 명계(冥界)를 다스리는 명왕(冥王)이라고 이름 붙였다. 
명왕성의 위성들 이름도 모두 저승과 관련이 있다. 
카론은 영혼을 실어나르는 저승의 뱃사공, 스틱스는 이승과 저승을 가르는 강, 
케르베로스는 저승 입구를 지키는 머리 셋 달린 개, 닉스는 밤의 여신이자 카론의 어머니, 
히드라는 플루토의 괴물이다. 
아주 먼 곳 어두운 왜소 행성의 이미지와 어울린다.

[만물상] 명왕성
▶명왕성은 지구에서 50억㎞ 떨어져 있다. 빛의 속도로 날아가도 네 시간 반이 걸린다. 
달보다 크기가 작아 관측부터 쉽지 않기 때문에 알려진 게 별로 없다. 
태양계 행성들이 거의 같은 평면을 움직이는 것과 달리 명왕성의 공전궤도는 크게 기울어 있다. 
그래서 탐사선이 접근하기도 힘들다. 
NASA가 그동안 외행성 탐사를 위해 쏘아 올렸던 보이저 1·2호와 파이어니어 10·11호가 명왕성에 못 간 것도 그 때문이다.

▶톰보의 말처럼 뉴호라이즌스는 아주 멀고 길고 추운 여행을 해야 했다. 
발사 1년 만에 목성에 도달해 목성의 중력을 이용하는 기법으로 더 멀리 날아갈 추진력을 얻었다. 
그런 뒤 명왕성을 향해 궤도를 크게 틀었다. 
그러고는 에너지를 아끼느라 필수 장비 난방을 제외한 모든 동력을 끈 채 사실상 동면(冬眠) 상태로 8년이나 외로운 비행을 
했다. 그러다 지난 1월 말 오랜 잠에서 깨어났다. 
허블망원경으로도 볼 수 없었던 명왕성의 생생한 모습을 전해주기 시작했다.

▶톰보는 1997년 세상을 떠 뉴호라이즌스의 발사를 지켜볼 수 없었다. 
대신 그를 화장(火葬)해 나온 재 일부가 탐사선에 실려 그가 평생 사랑했던 명왕성으로 먼 여행길에 올랐다. 
어제 뉴호라이즌스는 1만2000㎞ 거리를 두고 명왕성을 근접 통과했다. 이제부터는 더 먼 우주로 나아간다. 
'뉴 호라이즌스(New Horizons)'라는 이름 그대로 우주 탐사의 새로운 지평을 계속 열어 갈 것이다. 
무한(無限) 탐험을 추구하는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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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명한 하트 품은 명왕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