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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칼럼] 이젠 '원저(低)'를 당당히 거론해야

바람아님 2015. 8. 24. 11:15

 한국경제 2015-8-23

 

1985년 9월 미국 일본 영국 독일 프랑스 5개국 재무장관들은 미국 뉴욕에서 환율 관련 합의 사항을 발표했다. 일본 엔화와 독일 마르크화 절상을 통해 미국 무역적자를 해소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이 조치는 회담 장소인 뉴욕 플라자호텔의 이름을 따서 ‘플라자 합의’라고 명명됐다.

 

이는 당시 미국 무역적자의 38%가 일본으로 인해 발생하는 상황에서 나온 미국 측 초강수였다. 당시 달러당 240엔이던 환율은 플라자 합의 이후 3년 동안 120엔대까지 하락했다. 그야말로 ‘슈퍼 엔고(高)’ 국면이 나타난 것이다. 지금 원화 환율로 따져보면 달러당 1200원에서 600원이 된 셈이니 엔화 절상폭과 속도는 엄청났다.

 

 

일본은 이로 인해 수출이 줄고 경기가 둔화되자 확장적 통화정책을 통해 경기부양책을 시행했다. 그러나 부작용이 나타났다. 부동산과 주식의 이중 거품이 형성된 것이다. 1989년 말 닛케이225지수가 정점을 찍은 뒤 1990년 초부터 하락하기 시작했고, ‘잃어버린 20년’의 고통이 시작됐다.

 

그런데 이는 한국엔 엄청난 기회가 됐다. 일본 제품 가격이 상승하면서 우리 제품을 찾는 해외 소비자가 늘었기 때문이다.

한국은 플라자 합의 직후인 1986년부터 무역흑자를 내기 시작했다. 1986년 2000달러대였던 1인당 국민소득이 1995년엔 1만1000달러 수준까지 증가했다. 대박이 터진 것이다. 플라자 합의는 우리 경제가 ‘퀀텀점프’를 하도록 만든 일대 사건이었다.

최근 중국이 위안화 가치를 절하하며 세계 경제가 불안해지고 있다. 일본은 아베노믹스를 통해 이미 엔저(低)를 유도한 상황이다.

 

엔저에 ‘위안저’가 겹치는 ‘역(逆) 플라자 합의’ 국면이 나타나고 있다. 1990년대 중반 중국 위안화 평가절하와 일본 엔저가 겹치면서 한국의 외환위기로 이어진 상황이 데자뷔처럼 스친다.

한국과 중국 일본은 지금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산업구조가 비슷해진 세 나라가 한 운동장에 모인 형국이다. 특히 세 나라 모두 중화학공업 중심으로 가다 보니 이들 산업이 포화상태가 되면서 공급과잉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러다 보니 우리 기업들의 상황이 영 말이 아니다. 상장기업의 지난 상반기 순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약 20% 감소했다. 30대 그룹의 경우 지난해 순이익이 2010년 대비 반토막이 돼 버렸는데, 올 들어 더 줄어들고 있다.

 

중국은 내수가 약한 경제가 고임금 국면으로 가면서 생산비가 상승했다. 이 때문에 수출경쟁력이 약화되고, 기업 이익감소와 경기둔화의 악순환이 반복됐다. 더구나 오른 소득으로 주식투자를 한 중국인들은 상장기업 실적이 나빠지면서 주가가 하락하자 투자 원금을 까먹고 빌린 돈까지 갚아야 할 상황이 됐다.

‘조장(助長)’이란 단어가 있다. 벼의 싹이 올라오지 않는다고 답답해하다가 벼를 잡아 뽑았다는 데서 나온 말이다. 경제와 임금은 순리대로 풀어야지 ‘조장’을 해서는 안 된다. 기업 실적이 좋아진 결과로 임금이 자연스럽게 올라야지 임금부터 올려 경제를 활성화하겠다는 접근은 부작용이 크다.

 

엔저와 위안저가 겹치고 있는 현 상황에선 비판을 두려워하지 말고 당당하게 ‘원저’를 유도해야 한다. 엔저를 묵인하는 미국의 분위기를 역이용하면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한·미 정상회담에서도 이를 거론해야 한다.

또 ‘동북아 플라자 합의’를 추진하는 등 3국 간 공조체제를 구축해 동북아 금융외교를 주도해야 한다. 이 같은 시도만으로도 금융시장 심리 안정에 상당한 도움이 될 수 있다.

 

동시에 기업 투자 마인드 제고를 위한 규제 완화를 지속해야 한다. 독일의 하르츠 개혁과 같은 노동시장 유연화와 임금인상 억제 조치를 반드시 달성해야 한다. 이번 국면이 우리 경제에 전화위복의 계기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할 때다.

 

윤창현 < 서울시립대 교수·前한국금융연구원장 chyun3344@daum.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