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國際·東北亞

[바깥에서 보는 한국] 한국에서 반미주의는 죽었는가

바람아님 2015. 9. 17. 10:38

[중앙일보] 입력 2015.09.16

에이단 포스터-카터/영국 리드대 명예 선임연구원

이곳 영국에서는 한국 뉴스를 접할 기회가 많지 않다. 한국 뉴스는 거의 대부분 북한과 관련된 뭔가 나쁘거나 말도 안 되는 일에 대한 것이다.

 최근 어느 날 밤 누워서 BBC 방송을 듣고 있는데 지난 3월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를 습격한 김기종씨가 징역 12년형을 선고받았다는 뉴스가 흘러나와 귀를 쫑긋 세웠다. 극단적인 민족주의자인 그는 범행 현장에서 한·미연합군사훈련을 중단하라고 외쳤다. 남북관계 개선에 장애물이 된다는 이유에서였다. 김씨에 따르면 한국은 미국의 반(半)식민지인 반면 북한은 자주적이다. 그에게는 견해를 주장할 권리가 있지만 폭력을 행사할 권리는 없다. 한국은 주장을 평화적으로 펼칠 수 있는 민주국가다. 김씨의 방식은 정글에서나 통하는 법칙에 따른 것이다.

 습격 이후 보수주의 단체들은 친미 집회를 개최했다. 김씨는 외톨이 극단주의자일 뿐 그의 생각과 미국에 대한 한국인의 일반적인 의견은 완전히 무관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과연 그럴까. 마침 김씨가 수감된 날 나는 데이비드 스트로브 스탠퍼드대 한국학 프로그램 부소장이 보내준 새 책을 받았다. 스트로브 부소장은 미 국무부에서 근무할 때 대표적인 한국 전문가였다. 30여 년에 걸친 외교관 생활 중 그는 두 번(1979~82년, 99~2002년) 서울에서 근무했다. 새 책은 두 번째 서울 근무 중 일어난 일을 다뤘다. 책 제목은 『반미주의와 한국의 민주화』다.

 스트로브 부소장은 아마 책을 쓰기가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그는 한국을 좋아한다. 한국 여성과 결혼했다. 한국은 그에게 고향이다. 그래서 두 번째 한국 근무에 기대가 컸겠지만 그가 마주친 것은 계속 분출된 반미감정이었다.

 책은 순차적으로 노근리 양민학살 사건, 고엽제 후유증 환자 문제, 매향리 사격장 반환, 안톤 오노의 이른바 ‘할리우드 액션’ 사건, 대북 정책을 둘러싼 갈등 등을 다룬다. 클라이맥스는 ‘미군 장갑차에 의한 두 여중생의 처참한 압사 사건’이었다. 분노에 가득 찬 시위는 미국에 굽실거리지 않겠다고 말한 노무현 대선 후보에게 아마도 유리하게 작용했다.

 10년도 더 지났지만 기억에 생생한 일들이다. 대부분 복합적이고 논쟁적인 사건들이다. 스트로브 부소장은 사건마다 꼼꼼하게 다뤘다. 외교관으로서 그는 미국의 입장을 방어해야 했다. 한국 독자들은 ‘이번에 나온 책도 그런 게 아닐까’라고 반응할 수 있다. 그렇지 않다. 그는 한국인의 우려와 감정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 것을 포함해 미국의 잘못을 정직하게 인정하고 있다.

 사건마다 성격이 미묘하게 다르지만 한가지 공통분모가 있다. 저자가 방대한 인용으로 뒷받침하는 바에 따르면, 한국 언론은 사실을 보도하지 않았다. 보수언론이건 진보언론이건 한국 언론의 부정확하고 편향된 보도가 일이 터질 때마다 되풀이됐다. 보도에는 힘센 미국이 잘못했으리라는 것과 한국은 항상 잘못 없이 상처받는다는 전제가 깔려 있었다.

 영국·아일랜드 혈통인 나는 한국을 사랑하고 미국을 좋아한다. 편파적이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나 또한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2008년의 광우병 사태만 해도 정도가 지나쳤다. 팩트는 미국산 쇠고기가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안전하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많은 한국인의 분노가 폭발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책 제목인 『반미주의와 한국의 민주화』가 시사하는 것처럼 1990년대 말, 2000년대 초에 반미주의가 분출한 한 원인은 민주주의였다. 독재 40여 년 동안 한·미 동맹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거나 반역이었다. 민주화 이후 반대쪽 극단을 표방하는 사람들이 일부 생겨났다. 잠시지만 ‘미국에 맞서야 할 때가 왔다’는 분위기가 조성됐다. 나 또한 한국인의 마음속에는 미국에 대한 상반된 감정이 공존한다는 것을 경험했다. 82년 한국을 여행하면서 내가 미국인이 아니라 영국인이라는 것을 밝혀야 한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내가 ‘미국놈’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자 상당수 한국인은 나를 훨씬 친절하게 대했다.

 그렇다면 지금은? 1999~2002년은 예외적인 시기였을까. 스트로브 부소장은 현재는 한국이 대체적으로 친미라고 진단한다. 그의 책이 인쇄된 것은 리퍼트 대사 피습사건 이전이었다. 물론 아무리 충격적인 사건이라도 한 가지 사건에 지나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

 하지만 방심도 금물이다. 여기저기서 반미감정이 부글부글 끓고 있다. 우리가 바라는 것보다 반미감정은 더 깊고 더 넓다. 김씨를 암묵적으로 지지하는 걸개그림을 그린 동양화가 홍성담은 김씨의 칼을 ‘과도’라고 표현했다.

 ‘과도’라고? 리퍼트 대사는 거의 죽을 뻔했다. 1945년 이후 미국의 한국 정책은 잘한 것과 잘못한 것이 있다. 이를 따지려면 아주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민주주의자라면 이성을 사용하며 폭력을 혐오한다. 휘두를 것은 칼이 아니라 말이다.

에이단 포스터-카터 영국 리드대 명예 선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