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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사일언] 안받으면 섭섭한 명절선물

바람아님 2015. 10. 6. 09:14

(출처-조선일보 2015.10.06 팀 알퍼·칼럼니스트)


팀 알퍼·칼럼니스트 사진매년 명절 때면 내 무릎은 수난을 겪는다. 
지하철이나 길거리에서 사람들이 들고 다니는 큼지막한 선물 보따리에 부대끼는 탓이다. 
특히 추석 땐 여전히 날씨가 더워서 반바지를 입을 때도 있는데, 그때마다 후회하곤 한다.

명절이란 개념은 유럽이나 미국에도 있지만, 직장에서 주는 명절 선물은 없다. 서양에선 보통 명절 
보너스를 받는다. 요즘엔 그것마저 계좌로 입금돼, 실질적으로 손에 쥐는 건 없는 셈이다. 
한국에선 그 반대다. 명절 때면 사람들이 샴푸나 치약, 견과류, 식용유 같은 것이 잔뜩 든 선물 세트를 2~3개씩 들고 다닌다. 백화점도 연휴 전날이면 동네 구멍가게라도 된 것처럼 이런 상품을 묶어서 팔아댄다.

그런 선물 세트를 들고 다니는 사람들 표정은 정말 행복해 보인다. 
내겐 마치 그 표정이 "우리 회사는 명절 때 이런 선물 세트를 사원들에게 줄 정도로 넉넉하답니다" 하고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칼럼 관련 일러스트
딱 한 번, 명절 때 선물 세트를 받아 본 적 있다. 
처음 보는 브랜드의 치약과 비누가 들어있는 세트였는데, 사실 형편없었다. 내 인생에서 받아본 선물 중 최악에 속했다. 
하지만 그걸 들고 집에 들어가던 때의 그 정체 모를 흐뭇한 기분은 아직도 기억난다. 
버스 안에서 나도 모르게 그걸 흔들다가 옆 사람 무릎을 치기도 했다. 
그 사람에게 "미안합니다" 하면서도 속으로는 "이거 회사에서 받은 거예요"라고 자랑해보고 싶었다.

명절 선물 세트의 신비한 점은 받아서 집에 가져올 때는 그렇게 멋져 보이던 물건들이 명절이 끝난 뒤엔 갑자기 초라하게 
보인다는 것이다. 주위에는 몇 달이 지나도록 선물 세트 개봉조차 하지 않았다고 하는 사람도 꽤 있다. 
선물이 중요한 게 아니라 명절 기분을 내는 게 중요하니까 그러는 것 아닐까.

올해 내가 다니는 회사에선 선물 세트를 주지 않았다. 대신 봉투를 줬다. 
백화점에서 파는 선물 세트보단 훨씬 유용할 것이다. 그래도 집에 갈 때 손이 허전한 기분만은 달랠 길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