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橫設竪設

[분수대] 당신은 어떤 부모인가

바람아님 2015. 10. 9. 08:23

 중앙일보 2015-10-9

 

반항심이 들끓던 사춘기, 커서 선생님과 부모는 되지 않겠다고 맹세하곤 했다. 반발심도 있었지만 어린 눈에도 아무나 돼서는 안 되는 힘든 일로 보였다. 영화 ‘초원의 빛’ 중 내털리 우드의 어머니가 “내 어머니가 나를 기른 방식대로 널 기를 수밖에 없었다”고 하는 대사가 있는데, 이를 이해하기까지도 오랜 세월이 필요했다. 한때의 치기 어린 맹세를 잊고 어찌어찌 부적격 부모가 됐지만, 지금도 아무나 준비 없이 부모가 돼서는 안 된다는 생각엔 변함없다. 몸만 어른이지 실상은 애가 애를 기르면서 그 애를 망치는 일을 여럿 봤다. 심리상담사들에 따르면 대부분 아이의 문제는 부모의 문제인데, 부모는 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아이에게 넘기는 것으로도 모자라 아이 탓만 한다. 또 부모가 바뀌어야 자식이고, 세상이고 다 바뀐다는 믿음은 살아갈수록 커진다. 

 

개봉 중인 영화 ‘사도’는 잘 알려진 영조와 사도세자의 이야기다. 한 불완전한 아버지의 과잉 기대가 역시 불완전한 아들을 죽음으로 내몰기까지를 그렸다. 영조는 후궁의 아들이라는 콤플렉스에 시달렸고 귀하게 얻은 아들을 통해 정통성을 보상받으려는 심리가 강했다. 그는 아들의 예술가 기질을 받아들이지 못했고, 그렇게 쌓인 실망과 갈등은 세자의 광증과 뒤주 감금으로 이어졌다. 정력가였고 보기 드물게 장수한 영조는 대리청정을 하면서 장성한 세자를 무기력하게 했는데, 만약 영조가 그리 오래 살지 않았거나 그리 뛰어나지 않았더라면 우리가 아는 끔찍한 결말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영화를 보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앞자리 젊은 관객은 영조만 등장하면 짜증을 냈다. 나도 울컥울컥 자리를 박차고 나오고 싶은 것을 꾹 참았다. 부모 입장 아닌, 아버지에게 거부당하는 가여운 아들에게 깊이 감정이입된 탓이다. “너를 얼마나 아꼈는데 이럴 수 있느냐?” “나보다 나은 환경인데 왜 그 모양이냐?” 영조의 대사다. 나도 많이 들으며 컸고, 나 또한 자식에게 많이 되풀이했다.

 

‘사도’는 아버지라는 큰 산을 넘지 못한 아들이 결국 아버지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영화다. 왕좌라는 권력을 지키기 위해 부족한 아들을 스스로 저버린 비정한 아버지에 대한 영화기도 하다. 동시에 지금 이 시대 부모의 길을 묻는다. 당신은 어떤 부모인가. 예전의 당신이 닮고 싶지 않았던 부모와 과연 얼마나 다른가. 바야흐로 ‘세대전쟁’의 암운이 감도는 가운데 젊은 세대의 눈에 비친 부모의 모습은 어떤 것일지 궁금하기도 하다.

 

양성희 논설위원

 

양성희</br>논설위원

양성희/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