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2015-10-07
파란만장 性체험기 ‘이기적 섹스’ 펴낸 은하선
나 나름대로 성(性)에 대해 열린 사고를 가졌다고 여겼다. 세계적인 성학자 홍성묵 교수 등 수많은 성전문가와 교류하고, 섹스에 대해 남다른 가치관과 경험을 가진 다양한 사람을 인터뷰하며 쌓은 ‘내공’을 믿었다. 그런데 이 여자를 만나고 모든 게 무너졌다. 나 역시 ‘남근 중심 사상’에서 못 벗어난 한 마리 수컷에 지나지 않았다.
표지부터 야릇하다. 남자 성기 모양의 네온사인이 달린 ‘Moving Sex Shop’ 트럭이 그려져 있고, 제목 양쪽에 정액이 분출하는 것 같은 이미지도 자극적이다. 부제도 도발적이다. ‘그놈들의 섹스는 잘못됐다’라니. 최근 출간된 ‘이기적 섹스’(동녘)란 책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내용은 파격적이다. 중학생 시절의 첫 경험 등 파란만장한 성 체험과 새로운 시각의 섹스관(觀)이 ‘정말, 이렇게 써도 되나’ 싶을 정도다. 무엇보다 ‘성기=나 자신’이라 철석같이 믿고 있는 ‘고추 달린 놈’들에게 너희들의 섹스가 뭐가 잘못됐는지 조목조목 질타한다. 이런 발칙한 책을 낸 은하선(필명 · 27)이란 여자가 궁금했다.
그를 만나러 서울 마포구 상수동 골목길 깊숙한 곳에 자리 잡은 걸스타운이라는 비스트로 바를 찾았다. ‘걸스타운’, 이름부터 남다르다. 은하선 씨가 운영하는 건 아니고 친구가 하는 걸 돕고 있다고 했다. 그는 가게 귀퉁이에 ‘은하선의 빈 공간’이란 이름으로 자신이 소장한 여성용 섹스토이를 전시하고 있다. 60개쯤 됐다. 대부분 국내에서 구하기 힘든 물건들이라고 한다. “돈이 꽤 들었겠다”고 하자 “구입비용을 다 합치면 최고급 명품백 하나는 사고도 남았을 것”이라며 웃었다.
‘정말 사랑스러운 아이’
“비슷한 것 같아도 제품마다 다 다르다. 진동의 강약에 따라 느낌이 다르고, 실리콘 성능에 따라 감촉이 다르다. 어떤 건 푹신하고, 또 어떤 건 겉은 부드러운데 안은 단단해서 압박감이 다르다. 손에 쥐는 그립감도 차이가 있다. 질적인 차이도 있고, 취향에 따라 선택할 수 있다.”
그가 바이브레이터 몇 개를 꺼내왔다. 컵케이크 모양의 바이브레이터는 섹스 기구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예쁘고 귀엽다. 전체가 실리콘으로 돼 있어 모든 부분을 이용할 수 있는 게 장점이란다. 다이아몬드 모양도 있다. 케이스도 고급스럽다. “케이스를 열 때 프러포즈 받는 느낌이 들어 좋다. 정말 사랑스러운 아이다”라고 말하는 그의 얼굴엔 행복한 미소가 흘렀다.
끝이 살짝 갈라진 제품도 눈에 띄었다. 클리토리스를 자극하는 용도인 듯했다. “손에 쥐는 느낌이 좋다”고 해 만져보니 부드럽고 폭신했다. 끝에 짧은 빨대 같은 게 달린 기구도 있다. 구멍에 새끼손가락을 대자 살짝 빨려들어가는 느낌이다. 클리토리스를 빨아들이며 자극한다고 했다.
▼ 팔기도 하나.
“전시만 하고 있는데, 반응이 좋아서 구매하고 싶다는 사람이 많다. 전시해놓은 것들 중에 우리나라에 아직 정식으로 수입되지 않은 물건이 많다. 그래서 아쉬워하는 분이 많다. 독일로 돌아가면 구매대행을 해볼까 생각 중이다.”
▼ 독일에 살고 있나.
“대학 졸업하고 지난해 유학을 떠났다. 지금은 잠깐 들어온 거고 9월 말에 돌아간다.”
바이브레이터 찾는 노인들
▼ 섹스토이엔 언제부터 관심을 가졌나.
“고등학생 때부터. 그때도, 지금도 내 꿈은 여성 전용 섹스숍을 만드는 거다. 섹스숍은 내게 꿈같은 곳이다. 대학교 다닐 때 섹스숍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했다. 너무 재미있고 좋았다. 기구들도 열심히 닦아놓고, 리얼돌에게 정성껏 화장도 해줬다.”
▼ 섹스숍엔 주로 어떤 사람들이 오나.
“가게가 동대문 대로변에 있고 매장도 커서 손님이 많은 편이었다. 주로 할아버지들이었다. 커플은 두세 쌍, 여자 혼자 온 경우는 딱 한 명 봤다.”
▼ 주로 어떤 물건들을 사가나.
“가령 사고로 성기 일부가 절단됐거나 발기부전일 때 사용하면 좋은 특수 콘돔이 있다. 플라스틱 비슷한 재질로 만든 건데 딜도 같은 기능을 한다. 그걸 찾는 사람들도 있고, 가짜 비아그라도 팔았는데 그걸 사러 오는 고객이 많았다. 가장 인상적인 건 장미꽃 한 다발을 들고 비아그라 두 알을 달라던 할아버지였다. 너무나 로맨틱해 보였다. 딜도나 바이브레이터를 추천해달라는 노인도 많았다.”
▼ 노인들은 남성용 자위기구를 많이 찾을 것 같은데.
“그렇지 않다. 남성용 자위기구는 젊은 사람들이 구매하지, 나이 많은 분들은 별로 없다.”
▼ 그런 곳에서 젊은 여성이 일하면 치근대는 남자가 많을 듯한데.
“그런 경우는 딱히 없었다. 가끔 남성용 자위기구를 가지고 와서 어떻게 사용하냐고 물어보는 경우가 있다. 이 홀(구멍)에다 넣고 사용하면 된다고 하면 ‘여기에다 뭘 넣냐’고 물어본다. 그런 말장난 정도다.”
▼ 독일에서도 섹스숍을 많이 가봤겠다.
“많이 돌아다녔다. 독일엔 여성을 위한 섹스숍이나 성소수자를 위한 섹스숍이 많다. 귀엽게 꾸민 예쁜 숍도 많다. 베를린에선 매년 에로틱박람회가 열린다. 포르노 배우들이 와서 사인회도 한다. 섹스토이 부스가 많은데 신제품도 많고, 저렴하게 살 수 있어 좋다. 독일은 우리와 문화 자체가 다르다. 섹스숍에 가면 젊은 부부가 유모차 끌고 다니며 함께 구경하고 구매하는 걸 흔히 본다.”
섹스토이 전도사
▼ 섹스토이를 처음 사용한 건 언제인가.
“고등학생 때 사귀던 직장인 오빠가 사줬다. 바이브레이터 기능이 있는 딜도였다. 엄청 좋았고 잘 썼다.”
▼ 책에 ‘첫 딜도를 손에 쥐고 오르가슴을 느꼈던 순간을 공유하고 싶다’고 썼을 정도인데, 어떤 면이 그렇게 좋았나.
“확 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그 뒤 마니아가 됐다. 손이나 다른 기구로 할 때는 물론 남자랑 할 때와도 확연히 다른 느낌이었다.”
▼ 남자들은 딜도 사용하는 걸 싫어하지 않나.
“왜 싫어할까. 남자들이 자기 성기에 너무 집착하는 거 아닐까. 사회가 그렇게 만들기도 했겠지만. 남자는 어려서부터 ‘고추 달린 놈’ 소리를 듣고 자란다. 오줌발 경쟁을 하고, 크기를 비교하고…. 그러다보니 성기가 곧 자신이 되는 경우가 많다. 딜도를 사용하면 자기에게 만족하지 못하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잘못된 생각이다. 딜도를 사용하면 남자도 더 자유로워진다. 상대를 더 재미있게 할 수 있으니까.”
▼ 딜도와 남자의 성기는 차이가 있지 않나.
“말랑말랑 실리콘 딜도라도 진짜 사람 피부는 아니니까 아무래도 차이가 있긴 하다. 하지만 그 차이는 정말 미세하다. 그리고 적어도 내겐 딜도가 남성 성기 대용은 아니다. 상대와 섹스를 하는 거지, 성기와 하는 건 아니다. 남자들이 딜도를 두려워하고 성기를 자기 자존심이라고 생각하는 한, 여자들이 어떤 섹스를 원하는지를 제대로 알고 받아들이기 힘들다.”
▼ 아직 우리 사회에서 여성이 드러내놓고 섹스토이를 사용하긴 힘들지 않나.
“그래서 섹스토이 사용 후기가 많지 않을뿐더러, 있더라도 대부분 남자들이 올린 거다. 실제 소비자는 여성인데도. 내가 진행한 섹스 워크숍에 참여한 여성들 중에도 처음 만져봤다는 경우가 많았다.”
▼ 섹스토이 전도사 노릇을 많이 해야겠다.
“섹스숍 아르바이트를 그만두고 운 좋게 인연이 닿아 섹스토이를 협찬받아 사용한 뒤 후기 올리는 일을 하면서 다양한 섹스토이를 체험했다. 이게 계기가 돼 석 달 동안 섹스숍을 빌려 일요일마다 ‘은하선의 일요일’이란 여성전용 섹스숍을 열기도 하고, 대학축제에서 ‘은하선의 움직이는 섹스숍’이란 섹스토이숍을 운영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여성들을 대상으로 섹스 세미나, 섹스 토크를 여러 차례 진행했다.”
▼ 처음 성에 눈뜬 건 언제인가.
“5, 6세 때가 아니었나 싶다. 하루는 옆집 언니가 방을 어둡게 한 다음 ‘이렇게 하면 기분이 좋아진다’면서 장난감 같은 걸 내 팬티 위에 대고 성기를 문지르고 압박한 적이 있다. 그게 최초의 기억이 아닐까 싶다. 사실 그 기억은 한동안 지워졌다가 얼마 전에 생각이 났다. 초등학교 때는 친구들과 인형놀이를 많이 했다. 인형 옷을 다 벗긴 채 인형끼리 비비며 노는 식이었다. 그러다 엄마가 들어오면 갑자기 옷을 갈아입히는 것처럼 했다. 본능적으로 남이 보면 안 되는 행동이라는 걸 알았던 모양이다. 고학년이 되어선 여자아이들끼리 키스 놀이도 했다. 나와 함께 그 놀이를 하며 놀던 친구들은 물론이고, 이런 행동을 한 여자아이들 대부분이 커서 그 사실을 말하지 않는다.”
“섹스…경험하고 싶었다”
▼ 이성에 대한 관심은.
“초등학교 1, 2학년 때 남자에게 뽀뽀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성기에 대한 관심보다는 그냥 좋아했다. 3, 4학년 때부터는 자위도 했다. 당시 PC통신 천리안에 올라온 야설을 보기도 하고, 어른으로 추정되는 상대 남자와 어른인 척하고 채팅도 했다.”
▼ 첫 경험이 중학교 때였던데.
“당시 동네에 칸막이가 있는 다방이 있었는데, 거기서 사귀던 대학생과 키스를 하곤 했다. 그러다 그 남자 자취방에 놀러가 내가 먼저 덮쳤다. 무척 경험하고 싶었다. 남자는 몹시 당황스러워했는데, 싫다고 하진 않았다. 그 남자도 그게 처음이었다. 내 성기가 어딘지도 찾지 못해 내게 물어볼 정도였다.”
▼ 호기심이었나.
“호기심이기도 했고, 해보고 싶었다. 순결, 결혼… 뭐 이런 생각이 들긴 했지만 섹스가 뭔지 경험해보고 싶은 욕구가 더 컸다.”
▼ 어땠나.
“당연히 좋았다. 물론 처음엔 살이 찢어지는 것처럼 아프고 안 좋았다. 하지만 점점 괜찮아졌고, 섹스가 좋아지기 시작했다. 그 남자랑 헤어진 다음에도 다른 남자들이랑 했다. 전부터 아는 사람도 있었고, 섹스 때문에 만난 사람도 있었다.”
10대 남자, 10대 여자
▼ 중학생 때 섹스는 너무 이르지 않나. 정신적, 육체적으로 미성숙한 시기인데.
“춘향이 이몽룡과 섹스를 한 게 15세 때다. 조선시대엔 다들 10대 때 아이를 낳지 않았나. 지금은 그 세대보다 발육이 더 좋은데 왜 못하나.”
그는 ‘10대의 성’을 바라보는 기성세대의 시각에 이의를 제기했다.
“10대 남자들의 자위에 대해선 사회적으로 관대하다. 아들 방에 티슈를 넣어주는 엄마는 ‘센스 있는 엄마’로 불린다. 남자아이가 야동을 보는 건 당연한 행동으로 인정한다. 그런데 10대 여자의 성은 여전히 터부시된다. 첫 생리를 하면 축하해주는 문화가 생겼지만, 그것뿐이다. 생리가 ‘이젠 너도 섹스를 할 수 있는 몸이 됐다’는 걸 부모들은, 우리 사회는 인정하지 않는다. 왜 10대 여자애들에게만 섹스를 감추려 하는지 모르겠다.”
▼ 10대 여자에게도 성욕이 많나.
“10대 남자애들은 성욕이 왕성한데 여자애들이라고 성욕이 없을까. 10대 여성들과 섹스 워크숍을 한 적이 있다. 대부분 나보다도 성욕이 더 왕성했고, 더 많은 성 경험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사람들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해 고민하는 게 안타까웠다.”
▼ 10대 섹스는 원치 않는 임신을 동반할 수 있다.
“원치 않는 임신은 성인에게도 일어나는 일이다. 임신이 문제라면 피임법을 제대로 알려주면 되지, 섹스 자체를 금기시하는 건 잘못이다. 더구나 임신이 문제라면 10대 여자애들의 성욕을 푸는 데 섹스토이가 유용한 도구다. 그런데 왜 섹스토이를 미성년자에게 금지하는지 모르겠다. 섹스를 허용하면 무분별하게 해서 문제가 될 것이라고 주장하는 분도 있는데, 그럼 성인들은 모두 섹스를 미친 듯이 하나? 그렇지 않다. 그리고 섹스를 많이 하는 것이나 성인이 되기 전에 하는 것이 왜 문제가 되는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 사회적으로 공감을 얻기 힘들 것 같다.
“10대들에게 섹스를 나쁜 행동인 것처럼 이야기한다. 섹스에 대한 강박관념을 심어줄 수 있어 더 위험하다. 10대 때 섹스에 대해 무지하고 부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다가 성인이 됐다고 갑자기 섹스에 자유로워지고, 섹스를 잘할 수는 없다. 거기서 많은 여성의 갈등과 고민이 생긴다.”
승용차, 화장실, 동아리실…
책에서 그가 털어놓은 섹스 체험은 파란만장하다. 섹스를 하기 위해 조퇴를 하고, 학원에 가기 전 승용차에서 잠깐 동안 넣었다 빼기만 해도 좋았다고 고백한다. 장소도 파격적이다. 모텔, 자동차, DVD방, 카페 구석, 공중화장실은 물론 학교 동아리실까지 다양하다. “마음에 드는 남자와 만나면 자꾸만 하고 싶어져 몸이 꼬이는 탓에 일단 섹스부터 하고 봤다” “영화를 보러 가자는 제안보다 섹스를 하자는 말이 내겐 더 달콤했다” “하루 종일 밥도 안 먹고 그렇게 섹스만 했다”고 당당히 말한다.
“왜 그렇게 섹스가 좋으냐”고 묻자 그가 “그러게요” 하며 웃었다. 그러고는 “기자 분은 섹스 안 좋아해요?” 하고 반문했다. 할 말이 없어 나도 웃었다.
▼ 그 정도면 중독 아닐까.
“좋아하긴 하는데 중독까지는 아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랑 다 해보고 싶은 정도는 아니다(웃음). 지금은 유학 중이라 애인과 6개월 이상 떨어져 장거리 연애를 하는데 그동안 섹스를 한 번도 안 했다. 그래도 잘 산다.”
▼ 섹스를 하는 원칙이 있나.
“원칙이 있는 건 아닌데,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 다른 사람하고의 섹스는 생각이 안 난다. 그렇지 않을 때는 ‘원나이트’도 했다.”
▼ 가장 기억에 남는 섹스라면.
“야외에서 한 게 기억에 남는다. 특별히 좋았다기보다는 상황이 주는 스릴이 있다. 바닷가 갯바위 뒤에서 하고 있는데, 아저씨들이 낚시도구를 들고 우르르 오기에 후다닥 옷을 입은 적도 있다.”
▼ 섹스로 인해 문제가 생긴 적은 없나.
“고등학교 땐 피임을 잘했다. 그러다 대학에 가서 콘돔 끼는 걸 싫어하는 남자를 만나면서 안 했는데 그게 습관이 됐다. 솔직히 내게 임신 같은 건 없을 거라고 방심했다. 남자가 사정하기 직전에 빼면 괜찮을 거라고 생각하다가 한방 맞았다. 그런데 남자가 모른 척하더라. 혼자 산부인과에 갔다. 자궁외 임신이어서 자연유산됐다.”
▼ 그런 일 겪으면 후유증이 클 텐데.
“잠깐 있었다. 한 달 정도?(웃음)”
“나는 문란하지 않다”
▼ 성적으로 문란하다는 생각은 안 해봤나.
“그렇게 생각 안 한다. 다들 섹스 한번 하고 그 상대와 결혼하는 것은 아니지 않나. 내 인생이다. 아파도 내가 아픈 거다. 물론 그런 말을 들으면 ‘내가 난잡한 건가’ 하는 생각이 들긴 한다. 하지만 죄의식보다는 ‘하고 싶다’는 생각이 더 컸다. 힘들기도 했다. 산부인과만 가도 어리면 뭐라고 하니까 그 말에 상처받고, ‘내가 이렇게 해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자연스럽게 풀어온 것 같다. 그런 면에서 페미니즘이 내게 좋게 작용한 것 같다. 순결의 강요는 가부장제가 만들어낸 것이다.”
▼ 당신에게 섹스란 무엇인가. 사랑의 표현 방법? 단순한 성욕 해소?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내겐 사랑이 있어야만 섹스가 극락에 오를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사랑하는 사람이랑 하면 섹스가 즐겁기도 하지만, 섹스의 쾌락과는 별개 문제다. 원나이트가 정말 더 만족스러울 때도 있다.”
▼ 사랑과 섹스는 별개라는 말?
“별개이기도 하고, 같이 가기도 하고…. 완벽한 매칭은 없다고 생각한다.”
“삽입 신화를 깨라”
그는 책에서 ‘그렇게 열심히 자지만 빨고 다니던 내 섹스 인생 12년 만에 새로운 막이 열렸다. 여자를 만나게 된 것이다’라고 고백한다.
▼ 뒤늦게 자신의 성 정체성에 눈뜬 건가.
“전에는 여자에 대해 관심도 없었고, 여자와의 섹스가 가능할 거란 생각도 못했었다. 그런 제안을 받은 적도 없었고.”
▼ ‘여자와의 섹스가 가능하다는 걸 알게 되자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고 했는데.
“여자와 하게 되면서 세상을 보는 스펙트럼이 넓어졌다는 이야기다. 어떤 해방감이 느껴졌다고 할까.”
▼ 여자와의 섹스는 남자와 하는 섹스와 어떻게 다른가.
“남자와의 섹스도 재미있지만 여자와의 섹스가 주는 재미가 또 있다. 내가 상대에게 해줄 수 있는 게 더 많고, 내가 주체가 돼 섹스를 컨트롤할 수 있는 게 좋았다. 남자와의 섹스는 역할이 정해진 느낌이다. 내가 상대적으로 수동적이 된다고 할까. 그게 나쁘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여자와 하면 더 다양하고 재미있는 쾌감을 느낀다. 여자 몸이 더 부드럽고, 더 섬세하기도 하고.”
▼ 여자끼리는 삽입섹스가 불가능해 결국 딜도를 활용한다. ‘그럴 거면 왜 여자랑 해? 진짜가 있는데’라는 반론이 나올 법하다.
“레즈비언은 무조건 섹스할 때 딜도를 쓴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딜도를 한 번도 본 적 없는 레즈비언도 많다. 나도 딜도를 사용하기도 하지만, 입이나 손으로 섹스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남자들은 자기 걸 넣기만 하려는 데서 오는 불쾌감이 있다. 그것도 너무 빨리 넣으려고 한다. 하지만 여자와 섹스를 하면 삽입에만 집중하지 않고 다양한 것을 해볼 수 있어서 좋다. 남자들은 삽입 신화를 깨야 한다.”
▼ 남성 독자들을 위해 여성을 만족하게 할 수 있는 비밀을 알려준다면.
“여자들이 원하는 섹스, 만족스러운 섹스를 이거다라고 규정하기는 불가능하다. 사람마다 다 다르다. 흔히 클리토리스를 자극하면 오르가슴에 오른다고 하는데, 다 좋아하는 건 아니다. 여자의 오르가슴은 단순하지 않다. 내 경우 똑같은 바이브레이터로 자극해도 어떤 생각을 하는지에 따라, 손목 스냅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쾌감이 달라진다.”
▼ 그럼 도대체 어쩌라고…(웃음).
“연구하고 노력해야 한다. 다른 사람이 가르쳐주는 건 한계가 있다. 특히 오르가슴은 수학 공식처럼 정해진 정답이 있는 게 아니다. 그건 남자도 마찬가지다. 내 경험상 남자들도 저마다 취향에 따라 만족감을 느끼는 체위와 애무 형태가 다 달랐다. 열심히 해봐야 상대방이 좋은지 안 좋은지 알 수 있다.”
그는 한 가지 팁을 줬다.
“여성에게 클리토리스는 신이 주신 축복이다. 그런데 삽입섹스를 할 때 이곳을 세게 자극하기 힘들다. 페니스링을 착용하는 방법도 있지만, 바이브레이터를 사용하면 더 쉽게 클리토리스를 자극해 여성이 오르가슴에 오를 수 있다. 섹스토이가 섹스를 더 윤택하게 만든다.”
‘이성애자 남성’ 위한 성문화
▼ 섹스와 관련해 당신이 느낀 한국 남성들의 문제는 뭔가.
“남자는 뭔가 가르치려는 경향이 있다. 나도 해볼 만큼 해봤는데, 자기가 해본 것만이 정석인 것처럼 여긴다. 자기 섹스에 대해 자신만만해하는 남자도 많다. ‘이렇게 하면 다른 여자들은 다 좋아서 울고, 뻑 가는데 너는 왜 안 그러느냐’며 화를 내는 경우도 있었다. 그렇다고 좋지도 않은데 계속 ‘좋다’고만 할 수는 없지 않나. 심지어 여자가 ‘나 이렇게 해줘’라고 말하는 것 자체를 싫어하는 남자도 있었다.”
▼ 상대를 배려하는 남자도 많지 않나.
“대부분 여자들이 내 글을 보고 동의한다. 그만큼 이런 남자가 많다는 것이다.”
그는 우리 사회 섹스 문화의 문제점을 거침없이 쏟아놓았다.
“우리 사회에서 거론되는 섹스란 게 대부분 성인 남성 이성애자 중심이다. 여성 자신을 위한 섹스는 이야기되지 않는다. 여성의 욕망을 이야기하기보다는 남성의 욕망을 어떻게 충족시켜줄 것인지에 집중돼 있다. 명기(名器)를 만든다는 방중술도 결국 여성 자신을 위한 게 아니라 남자들에게 맞춰진 거다.”
▼ 상당수 남자도 성에 개방적인 여성들을 좋아한다.
“그 개방이란 게, 남자들을 위한 개방일 뿐이다. 여자를 쉽게 ‘따먹으려는’ 술수라 할까. ‘성 개방’ ‘섹스의 자유’를 명분으로 남자가 요구하면 다 받아줘야 하고, 받아주지 않으면 ‘쿨’하지 않은 여자로 낙인찍는다. 섹스 경험을 공개하지 않거나 섹스 경험이 없다고 하면 ‘내숭 떤다’고 비난하고, 당당하게 섹스 경험을 공개하는 여성이 세련되고 쿨한 여성인 것처럼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까졌다’고 욕한다.”
그는 “같이 즐겼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자신이 ‘헤픈 년’ ‘걸레’로 불리고 있을 때의 배신감과 치욕스러움은 겪어보지 않고는 모른다”고 했다.
“이런 일을 겪고도 당당하게 ‘나 섹스했다. 그래, 어쩔래?’라고 말할 수 있는 여자는 그렇게 많지 않다. ‘그래 나 걸레다, 그래 나 헤픈 년이다, 그래 나 섹스 좋아한다. 그래서 어쩔래?’라고 당당하게 말하고 싶었다.”
웃긴다, 남자들의 ‘근자감’
▼ 여자들이 어떻게 해야 한다고 보나.
“여자들도 이젠 이타적 섹스가 아닌 이기적 섹스를 해야 한다. 자기만족적 섹스, 자기중심적 섹스를 해야 한다. 그래야 행복해질 수 있다. 이젠 스스로 느끼며 즐길 때도 되었다. 그러기 위해선 자기 몸을 알고, 자기가 어떤 섹스를 좋아하는지 알아야 한다.”
▼ 자기 몸을 아는 방법은.
“자위를 통해 자기가 어떻게 해야 느낄 수 있는지 알 수 있다. 자위는 자신의 몸과 욕망을 알아가기 위한 과정이자 주체적인 성 경험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자위를 통해 스스로 오르가슴에 올라본 여자와 그렇지 않은 여자는 다르다. 부끄러운 행동,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이 절대 아니다.”
그는 책을 쓴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했다.
“여전히 많은 여성이 섹스에 대해 부끄러워한다. 그런 여성들에게 네가 섹스를 하고 싶은 게, 자위를 하는 게 잘못이 아니다. 너만 그런 게 아니라 다른 여자들도 다 하고 있다는 걸 말해주고 싶었다. 그러나 섹스에 대해 말하기 부끄러워하는 여성을 깨이지 않았다거나 쿨하지 못하다고 바라보는 시선은 경계하는 편이다. 여성들은 어려서부터 조신하라는 말을 들으며 살았기 때문에 이렇게 생각하는 게 어찌 보면 당연하다. 자기 성기가 어디 있는지도 모르고, 자위 방법도 모르고 자랐는데 어른이 됐다고 갑자기 섹스를 즐기고 잘할 순 없다. 다른 사람이나 주변의 시선을 신경 쓰기보다는 자신의 욕망에 집중하는 여성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그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책을 통해 어떤 식으로 살아야 이 세계가 조금 더 나아질까 함께 고민해보고 싶었다. 성해방은 섹스를 좋아하는 것도, 섹스를 무조건 많이 하는 것도, 섹스 제안을 거절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어떤 것이 좋고 어떤 것이 싫은지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것이 진정한 성해방이다. 여자들이 섹스에 대해 두려워하지 않고 입을 열 때, 여자들이 자신의 욕망에 대해 알 때 비로소 진정한 성해방의 시대가 열린다고 본다.”
▼ 섹스를 좋아하는 것과 그 경험을 글로 써서 공개하는 것은 다른 문제인데.
“섹스 경험과 생각을 글로 쓰기 시작한 이유 중엔 나 스스로 얽매고 있는 것에서 자유로워지고 싶은 것도 있다. 예를 들어 10대 때 처음 섹스를 했는데, 그땐 그 사실을 누군가에게 말할 수 없었다. 나를 까진 애로 보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런 이중적인 면, 세상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게 있었다.”
▼ 그게 스트레스였나.
“스트레스는 아니었지만, 응어리로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그게 20대에 와서도 마찬가지였다. 사귄 남자친구들에게 10대 때 섹스를 했다고 하면 불량학생, 잘못된 길을 걸어온 아이로 봤다. 그래서 일부러 말하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여전히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 하는, 사회의 편견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그런데 글을 쓰면서 굉장히 자유로워졌다. 또한 글을 쓰면서 옛날에 있었던, 그동안 잊고 있던 경험들이 떠올랐다. 그것들을 하나하나 꺼내면서 일종의 치유작업이 되었다.”
▼ 섹스에 대한 글을 쓰다보면 난감한 일도 많이 겪을 것같다.
“내가 매일 섹스를 하고, 언제든 섹스 제안을 받아들일 거라는 오해를 받는다. 섹스하자는 메일을 종종 받는다. 심지어 자기가 몸이 아파서 고추가 작아졌는데 괜찮겠느냐는 메일을 보낸 사람도 있다. 내가 바이섹슈얼이라는 걸 아는 사람은 다 안다. 하지만 나랑 섹스하고 싶다고 연락하는 여자는 한 명도 없다. 그만큼 뻔뻔한 남자가 많다는 것이다. 이 사회에서 섹스에 대해 글을 쓰는 한 이 정도 고충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짜증이 날 때도 있다.”
▼ 성격이 긍정적인 모양이다.
“나와 비슷한 일을 하는 분이 겪은 일을 이야기해준 적이 있다. 그분은 함께 술을 마시던 남자가 너무나 아무렇지 않게 ‘자러 가자’고 하더란다. ‘내가 왜 그래야 하느냐’고 하자 ‘섹스에 대해 글을 쓰는 사람이 섹스도 못해줘’라고 하더라나. 섹스에 대한 글을 쓴다고 취향이 없는 건 아니다. 그런 근자감(근거 없는 자신감)은 어디서 오는 건지 모르겠다. 얼마 전 책 관련 기사 밑에 성희롱에 가까운 댓글들이 달렸는데, 그걸 보고 짜증이 나기보다 ‘아, 내가 이래서 책을 썼지’ 하는 생각이 먼저 들더라. 그런 것을 보면 긍정적인 것 같기도 하다.”
‘신동아’와 인터뷰한 이유
▼ 마지막 꿈은 여성 전용 섹스숍을 만드는 것인가.
▼ ‘신동아’ 독자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신동아 독자는 아무래도 성에 대해 보수적인 교육을 받은 세대가 주류가 아닐까 싶다. 자기가 알고 있는, 살아오면서 정립한 섹스에 대한 생각이 옳다고 고집하기보다는 조금씩이라도 그걸 깨며 변화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모두들 즐겁게 섹스를 하며 살아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최호열 기자 | honeypapa@donga.com
<이 기사는 신동아 2015년 10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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