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橫設竪設

[만물상] '거위걸음'

바람아님 2015. 10. 12. 09:14

(출처-조선일보 2015.10.12 강인선 논설위원)

'1984'의 작가 조지 오웰은 
"한 나라의 사회 분위기는 군대가 행진할 때 걸음걸이를 보면 금방 아주 정확하게 알 수 있다"고 했다. 
오웰은 1941년에 쓴 글 '사자와 유니콘'에서 "군사 퍼레이드란 일종의 의식(儀式)과 같은 춤으로 인생철학을 드러낸다"고 했다. 그가 군사 퍼레이드에서 끔찍하게 싫어했던 것이 '거위걸음(goose step)'이다. 
군인들이 무릎을 굽히지 않고 다리를 쭉 뻗어 위로 차올리는 듯 행진하는 모습이다.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지난 주말 열린 노동당 창건 70년 열병식에서 북한 군인들 거위걸음이 새삼 화제가 됐다. 
행진은 일사불란했지만 부자연스러웠다. 동영상 웹사이트 '유튜브'에 '거위걸음'을 입력하면 동영상이 줄줄이 뜬다. 
히틀러 50세 생일 기념 행진, 1976년 마오쩌둥 장례식, 1982년 구(舊)소련 브레즈네프 서기장 장례식…. 
사회주의권이나 권위주의 정권의 군사 퍼레이드가 주로 등장한다.

[만물상] '거위걸음'
▶북한군이었던 어느 탈북자는 젊은 시절 거위걸음 훈련을 오래 받아 지금도 무릎이 아프다고 한다. 
무릎과 발끝을 곧게 펴 90도까지 들어 올렸다가 다리를 쭉 편 상태로 힘껏 땅을 내리쳐야 했다. 
내리치는 힘이 곧 전투력이라며 강하게 발을 구르라고 했다. 
종일 훈련을 받다 보면 다리와 발, 허리가 아프고 다리가 마비되는 건 예사였다. 
정형외과 전문의 눈에 절대 따라 해선 안 되는 보행 방식이다. 
무릎 연골에 충격을 주고 발과 허리에 무리가 가기 때문이다.

▶오웰은 거위걸음이 '의식적으로 또 의도적으로 사람 얼굴을 군홧발로 짓밟는 장면을 연상시킨다'고 썼다. 
마치 깡패가 인상을 쓰면서 "그래, 나 추해. 하지만 네가 감히 나를 비웃을 순 없겠지"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고 했다. 
그는 이런 식 군사적 과시는 보통 사람들이 감히 군대를 비웃을 수 없는 나라에서나 가능하다고 봤다. 
그러므로 거위걸음은 "확실히 칼이 지배하는 사회에 속하는 것"이라고 했다.

▶거위걸음은 18세기 군사 강국 프로이센에서 시작했다. 
19~20세기 러시아·아시아·남미로 유행처럼 퍼져 나갔다. 
그러다 나치와 파시스트 전유물로 여겨지면서 비판과 조롱 대상이 됐다. 그래도 50개국쯤이 여전히 이 방식을 이어 온다. 
다만 다리를 차올리는 각도가 나라마다 다르다. 
북한은 90도, 중국은 60도다. 
소련 시절 90도였던 발차기가 사회주의 정권이 무너진 뒤 러시아에선 60도로 낮아졌다고 한다. 
열병식에서 '거침없이 하이 킥'을 높이 할수록 그 사회의 경직성과 억압성이 그만큼 세다는 뜻이다.



거위걸음(goose step) 동영상들

1. SS Goose step parade, 1935

2. Hitler's 50th Birthday Parade 221122-14

3. North Korean Army & Peoples Parade 2013 [HD][Summary by Russia Today]

4. Italians Goose Step for Hitler

5. Preussens Gloria - Ejercito de Chi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