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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남북] 중국 銀川에서 본 '강대국의 비결'

바람아님 2015. 12. 14. 08:27

(출처-조선일보 2015.12.14 지해범 동북아시아연구소장)


지해범 동북아시아연구소장 사진11월 중순 중국 황하(黃河) 상류 인촨(銀川)시에서 열린 '개방과 발전-인촨 포럼'에 참석했다. 

닝샤(寧夏) 회족자치구의 행정수도인 인촨은 무슬림인 회족(回族)이 총인구(208만)의 24%를 차지하는 

독특한 역사 도시이다. 시 정부가 주최한 이날 포럼은 인촨의 발전 방향을 모색하는 자리였는데 

내가 예상했던 모습과 사뭇 다르게 진행돼 놀라웠다. 

먼저 바이상청(白尙成) 인촨 시장이 입을 열었다. 그는 "인촨은 연해 도시와 달리 인구도 많지 않고 

지리적 장점도 없어 발전 모델을 설정하기가 쉽지 않다"고 운을 뗀 뒤 

"기술적 기초는 약하지만 전자상거래, 클라우드 서비스, 태양광 등 첨단 산업 쪽에 투자하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연구 기관에서 온 전문가들이 그를 에둘러 비판하기 시작했다. 

한 학자는 "도시의 발전은 그 도시가 처한 상황에 근거해 자신에 맞는 전략을 세워야 한다"며 

"이슬람 문화와 서하(西夏)제국의 역사를 적극 활용하라"고 주문했다. 

다른 연구자는 "후발 주자라고 해서 환경 산업 같은 것에 머물러선 안 된다. 주변 인구를 인촨에 끌어들여 서비스 시장을 

키우라"고 조언했다. 국토 개발 전문가는 "시진핑 주석이 제창한 일대일로(一帶一路·육상과 해상 신실크로드)를 활용해 

중국·러시아·몽골을 잇는 경제 회랑(回廊)을 구축하라"고 제안했다.


정부 권력이 어떤 나라보다 센 중국이어서 '시장님' 비위를 맞추는 토론회를 예상했던 나는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그동안 한국에서 자화자찬식 시정(도정) 홍보나 '좋은 게 좋다'는 식의 알맹이 없는 토론회를 많이 봐왔기 때문이다. 

인촨 시장은 어려움을 솔직히 인정했고, 전문가들은 "다른 도시를 모방하지 말고 자신의 발전 모델을 찾아내라"고 주문했다. 

포럼은 시종일관 진지하면서도 활기차고 내용이 알찼다. 비판에는 냉소 대신 애정이 담겨 있었다. 

중국의 지방 도시가 이런 수준 높은 포럼을 진행할 수 있다는 것이 신선한 충격이었다. 

중국 사회에 실용적 기풍과 '한번 해보자'는 의욕과 희망이 충만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날 아침 개회사를 마친 쉬광궈(徐廣國) 인촨시 당서기는 회의장 맨 앞줄에 3시간 동안 앉아 전문가들의 발언을 일일이 

메모했다. 한국의 웬만한 지자체장이라면 잠깐 얼굴만 비치고 자리를 떴을 법한데, 그는 이마의 땀을 닦으며 토론을 끝까지 

경청했다. 중국에 무능하고 부패한 관리도 있지만, 지역 발전을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는 지자체장들이 전국에 포진해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전에 롄윈강(連雲港), 닝보(寧波), 징하이(靜海)에서도 이런 지도자를 만난 적이 있다. 

중국이 30여년 만에 초강대국으로 도약한 것도 이들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한때 중국에 '상유정책(上有政策) 하유대책(下有對策)'이란 말이 유행했다. 

중앙에서 규제책을 내놓으면 지방에선 그것을 교묘히 피해 가는 사회현상을 풍자했다. 

요즘은 '정층설계(頂層設計) 기층창신(基層創  新)' 용어가 자주 들린다. 

공산당 지도부가 미래를 내다보는 '큰 그림'을 그리면, 일선에선 그에 호응해 어려움을 돌파할 방법을 강구한다는 뜻이다. 

인촨 포럼도 그런 노력의 일환이다. 

중국의 모든 지자체가 '창신 경쟁'을 벌이고 지자체장은 '인기'나 '표'와 관계없이 기업 경영자처럼 철저히 성과로 평가받는다. 

14억 중국은 오늘도 이렇게 달려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