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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칼럼] 한국호랑이는 아직 살아 있다

바람아님 2015. 12. 25. 07:33

(출처-조선일보 2015.12.25 이항 서울대 수의대 교수·한국범보전기금 대표)


이항 서울대 수의대 교수·한국범보전기금 대표"이제… 그만 갈까나." 영화 '대호'의 끝 부분이다. 
조선 최후의 명포수는 지리산 마지막 산군(山君)에게 그렇게 말을 건넨다. 지금부터 100년 전이다. 
늙은 포수에게도 상처 입은 호랑이에게도, 이 강산은 더 이상 발붙일 곳이 못 된다. 
포효 혹은 절규와 함께 둘은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대호'의 흥행 덕에 우리나라에 살았던 호랑이를 이야기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얘기는 대부분 '멸종'돼 버린 '한국호랑이'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마무리된다. 
그런데 한국호랑이는 정말 멸종됐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아직 살아 있다.

1904년 독일 동물학자 브라스는 줄무늬 차이를 이유로 한반도 호랑이를 러시아 연해주와 중국 동북부의 아무르호랑이
(Panthera tigris altaica)와는 다른 종(種), 즉 한국호랑이(Panthera tigris coreensis)로 분류했다. 
이 구분법은 1965년 '멸종 위기에 처한 야생 동식물의 국제 거래에 관한 협약(CITES)'이 한국호랑이를 아무르호랑이에 
편입시키면서 사라졌다. 야생에서 사라지고 이름까지 잃으면서 우리는 호랑이 멸종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게 됐다.

우리 호랑이의 생물학적 계통이 밝혀진 건 최근이다. 
2010년경 필자가 포함된 연구팀은 한반도 호랑이의 유전자와 여러 호랑이 아종의 유전자를 비교했다. 
100여년 전 전라도 등지에서 포획되고 반출돼 일본 도쿄국립과학박물관과 미국 스미스소니언 자연사박물관에 보관 중인 
호랑이 뼈가 표본이 됐다. 이 뼈에서 추출한 미토콘드리아 DNA 염기서열이 현존 아무르호랑이와 100% 일치했다. 
아무르호랑이가 한국호랑이라는 의미다. 멸종은 살아 있는 개체를 지구 어디에서도 발견하지 못하게 된 상황을 뜻한다. 
한국호랑이는 남한에서 사라졌을 뿐 멸종된 것은 아니다. 개발로 인한 서식지 파괴, 먹이 동물의 감소와 밀렵으로 멸종 위기에 
있지만 아직 450마리 정도의 아무르호랑이, 즉 한국호랑이가 연해주를 중심으로 러시아, 중국, 북한 접경에 살고 있다.

이 호랑이가 한반도로 돌아올 가능성도 있다. 호랑이는 수컷 1300㎢, 암컷은 400㎢에 달하는 행동반경을 갖고 있다. 
부모를 떠나면 영역 개척을 위해 400㎞씩 이동하기도 한다. 그들에겐 중국 동북부와 한반도 경계가 무의미하다. 
또 중국의 보호책으로 내륙으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옌볜에서 백두산까지는 200㎞에 불과하다. 
머잖아 우리는 적어도 '백두산 호랑이'를 갖게 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아무르호랑이 보호가 중국이나 러시아의 일일 수만은 없다. 
중국 동북지역 주민이 호랑이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지, 백두산 일대에 호랑이가 서식할 땅과 먹이 동물이 있는지 등에 
관심 가져야 한다. 호랑이가 한반도로 돌아올 조건이기 때문이다.

세계의 야생동물 보호단체와 시민은 아무르호랑이 보존에 힘쓰고 있다. 
그러나 정작 호랑이를 민족 상징으로 여겨온 한국인의 관심은 덜하다. 
'대호'에 더 관심을 갖자. 대호의 자손들이 저 북쪽의 추운 대륙 숲 속에서 아직 숨 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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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대호'를 봐야 할 이유…CG와 길몽

(출처-조선일보 2015.12.20)

“와!” 극장 안이 작지만 강한 탄성으로 가득 찼다.

지난 16일 개봉한 최민식 주연 영화 ‘대호’에서 또 다른 주인공 ‘김대호’(영화 속 주인공 호랑이에게 최민식이 붙인 애칭)가 
마침내 그 위용을 드러낸 순간이다.

국내에서는 1920년대 멸종돼버려 이제는 동물원 사파리 속 러시아 시베리아산(같은 아무르 종)으로 아쉬움을 대신하고 있는 
한국 호랑이가 눈앞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황금색 바탕 털에 검은색 줄무늬, 그리고 뺨의 흰색 갈기까지 한국 호랑이를 제대로 본 것은 ‘불행 중 다행’으로 동물원에 
갔을 때뿐이었지만, 절대 잊을 수 없는 그 모습 그대로였다. 
 영화 속 표현 그대로 ‘조선범의 왕’답게 보통 한국 호랑이보다 훨씬 거대한 몸집(길이 3m10㎝, 몸무게 400㎏)의 
김대호는 때로는 전광석화처럼 날렵하면서도, 때로는 태산처럼 진중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김대호는 첨단 정보통신기술(ICT) 기술의 힘을 빌려 창조됐다. 
그리고 그 컴퓨터 그래픽(CG)을 국내 업체인 크리에이티브 파티가 해냈다.

CG로 호랑이를 만드는 것은 다른 크리처(생명체)를 만드는 것보다 어려운 작업이다. 
털을 한 가닥 한 가닥 만들기도 쉽지 않은 데다 황금색 바탕 털과 검은 줄무늬가 카리스마 넘치면서도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면서 무늬를 그려내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김대호의 경우 연기까지 계속 해야 하니 몸놀림은 물론 근육의 변화, 
털의 흔들림까지 모든 것을 CG로 표현해내야 했다.

2013년 1월 국내에서도 개봉한 할리우드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감독 이안)가 그해 2월 제85회 아카데미 시상식에 차지한 
감독상, 촬영상, 시각효과상, 음악상 중 음악상을 제외한 나머지 3개는 역시 벵갈 호랑이 ‘리처드 파커’ 덕에 거머쥘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영화가 실사와 CG를 섞어 파커를 표현(이안 감독은 “(그런 작업이)더욱 획기적”이라고 자찬했지만)해냈던 것과 
달리 ‘대호’는 100% CG로 김대호에게 생명을 부여했다.

그뿐만 아니다. 김대호와 여동생의 어린 시절, 김대호의 엄마·아내·자식까지 그려냈다. 
’라이프 오브 파이‘를 능가하면 능가했지 전혀 뒤지지 않는다. 그러고도 순제작비는 ’라이프 오브 파이‘의 1억달러
(약 1175억원)의 10분 1 남짓한 140억원이다. 한국이 아니면 불가능한 제작이다.

‘대호’는 지난해 약 1600만 관객을 들인 ‘명량’(감독 김한민)의 주연배우 최민식이 1년여 만에 갖고 돌아온 신작에다 
2013년 2월 청소년 관람 불가 범죄액션 ‘신세계’로 약 468만 관객을 합작한 박훈정 감독과 최민식이 다시 만난 작품이다.

그래서 ‘신세계’의 또 다른 주역 황정민의 ‘히말라야’(감독 이석훈)과 더불어 올겨울 한국 영화 최대 기대작으로 꼽혀왔다. 
개봉일도 같아 용호상박의 대결을 펼칠 줄 알았다.

그러나 개봉 후 첫 주말인 19일까지 누적 관객 수 55만6518명에 그치면서 ‘히말라야’(108만6175명)에 압도당하고 있다. 
쏠림 현상이 심한 국내 관객 성향으로 볼 때 20일에도 반전을 기대하기 버거워 보인다.

영화를 두고 호불호가 갈릴지언정 1920년대 식민지였던 한반도에서 ‘해수 구제’를 명분으로 한국 호랑이를 절멸시킨 
일본에 보란 듯이 이를 창조해낸 아시아 최고의 CG  기술력만큼은 각광받기에 충분하다. 
이 영화를 봤다면 영화에 만족, 불만족을 떠나 그런 기술력을 확인한 것에 뿌듯해 하면 된다. 

남들의 이런저런 평가에 주저하고 있다면 무엇보다 연말이니 ‘대호’를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하다. 영화가 지루해 
깜빡 졸면 어떤가. 비몽사몽 간에 호랑이를 본다면 그게 바로 ‘호랑이 꿈’, 입신양명을 상징하는 ‘길몽’일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