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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희 칼럼] 1년에 100만개씩 사라지는 일자리

바람아님 2016. 1. 22. 20:24

(출처-조선일보 2016.01.21 강경희 경제부장)

올 인사철 찬바람 쌩쌩… 청년 취업 視界 제로
다보스포럼 "5년간 510만개 일자리 사라질 것"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한국 노동개혁은 후진 중

강경희 경제부장 사진연말연시 인사철엔 지인들과 전화 통화할 때도 조심스럽다. 

한직으로 밀려났는지, 승진했는지를 기억했다 위로나 덕담 한마디라도 건네지 않으면 서운함 느끼게 

만들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 자리 있다 저 자리로 간 사람들은 언젠가 원하는 자리에 갈 수도 

있다는 막연한 기대가 있으니 인사말 건네기가 영 껄끄러운 건 아니다.

올 인사철에 유독 한기(寒氣)가 느껴지는 이유는 기업이나 금융권이 허리띠를 바짝 졸라매는 통에 

어느 날 갑자기 회사 떠나게 된 사람들이 예년보다 많아서다. 바쁜 연말에 시간 잡지 못해 

새해에 얼굴 보자고 금융권의 한 임원과 일찌감치 약속 잡아놨었는데, 연말 인사에 그 역시 퇴직자가 

되는 바람에 새해 약속은 위로 모임이 되어버렸다. 

남들보다 두둑한 연봉 받아 뭔 걱정이겠나 싶던 대기업이나 금융권 임원들조차 하룻밤 새 실직자가 되는 걸 보면서 

간당간당한 월급봉투에 온 가족 삶을 매달고 달려온 우리 사회 힘겨운 중산층의 뒷모습을 본 것 같아 마음이 무겁다.

지금 노동시장에서 벌어지는 일이 그저 오래 일한 사람이 퇴장하고 새 사람이 입장하는 밀물 썰물 같은 흐름이라면 

개인적으로는 안타깝지만 사회 전체로는 별문제가 아니다. 그게 아니고, 언젠가 경기가 좋아지면 다른 곳에 일자리가 

생겨날 것이라는 일말의 기대나 내가 물러난 자리에 내 자식 세대가 힘차게 발걸음 내디딜 것이라는 기대를 할 수 없는 

시계(視界) 제로 상태다.

일자리 시장의 한파는 '한국만의 문제'와 '한국만의 문제가 아닌 문제'가 겹쳐 북극 한파보다 매섭고 사실 앞길이 

잘 보이지도 않는다.

지금 스위스의 휴양지 다보스에서 세계경제포럼(WEF), 일명 '다보스포럼'이 열리고 있는데 올해 주제가 '4차 산업혁명'이다. 

A4 용지로 100쪽 넘는 보고서를 내놨는데 제목이 '일자리의 미래'다. 

18세기 증기기관이 등장한 1차 산업혁명

19세기 대량생산이 가능해진 2차 산업혁명

20세기 정보화로 도래한 3차 산업혁명에 

이어 로봇과 인공 지능, 사물인터넷이 가져오는 21세기의 4차 산업혁명은 

그 이전 시대 이상으로 세계 산업 질서에 충격을 가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특히 WEF는 로봇이 일하고 인공 지능이 머리 굴리는 세상이 도래한 결과 오는 2020년까지 일자리 710만개가 사라지고, 

이전에 없던 일자리 200만개가 생겨날 것으로 봤다. 총합으로 따지면 5년간 510만개 일자리가 지구상에서 사라진다는 

계산이다. 1년에 100만개씩 일자리가 생겨나도 부족할 판에 매년 100만개 일자리가 줄어든다는 경고다. 

이 사라지는 일자리 중에 제일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직종이 사무·관리직(67%)이다.

금융·투자 분야도 큰 변화가 예상되는 업종에 꼽힌다. 

엊그제 우리 동네 아파트 단지에 있다 문 닫은 은행 지점도, 금융권에서 명예퇴직이라는 이름으로 우르르 밀려나는 

감원 조치도 1997년 IMF 외환 위기나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때와는 차원이 다른 구조조정이다. 

은행 거래를 인터넷이나 모바일로 처리하고, 로봇이 자산 관리까지 대신해주니 몇 년 불황을 버티기 위한 감원이 아니라 

세상에서 영영 사라지는 일자리 계열에 가깝다.

이 대변혁의 시대에도 생겨나는 일자리와 없어지는 일자리가 나라별로 균등하게 배분되는 게 아니어서 

4차 산업혁명의 선두가 되는 국가나 기업은 새 일자리를 대거 챙겨가는 승자가 될 것이고, 

그렇지 못한 국가나 기업은 세계 평균보다 더 썰렁한 한파를 느끼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제일 급한 건 이 가파른 변화 속도에 맞춰 교육도 혁신적으로 바꾸고, 일자리에서도 빠르고 유연하게 

재교육을 일으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는 4대 개혁(공공·금융·교육·노동) 중 

가장 속도를 내야 할 것이 노동 개혁과 교육 개혁이다.

한데 한숨 나오는 상황이다. 

미래 준비는커녕 과거 청산에 가까운 초보적인 수준의 노동 개혁조차 첫 단추를 꿰지 못하고, 

한국노총은 노·사·정 대타협의 판을 깨고 나갔고, 정치권은 정부가 하는 일마다 딴지 걸고, 대통령은 되는 게 없다며 

가두 서명에 나섰다. 

시대에 뒤떨어진 교육 시스템으로 급기야 한국 교육을 '대량 백수'를 생산하는 고비용 저효율의 애물단지로 전락시킨 

교육 당국은 교육 개혁이라고 부르기 민망한 수준의 교육 정책을 내놓고 여전히 직무 유기 중이다.


1·2차 산업혁명의 흐름에 뒤처졌던 한국 경제는 20세기 후반 뒤늦게 시동 걸어 헐레벌떡 달려왔다. 

숨 돌리기도  전에 닥쳐오는 4차 산업혁명 같은 대변혁의 입구에서 문지방 걸려 넘어질지, 성큼 넘을지 기로에 섰다.


연말에 짐 싸서 집에 간 월급쟁이들 대신, 무력한 정부, 선진화법 위에 올라앉아 후진하는 국회의원 300석, 

기득권에 집착하는 낡은 노조 단체부터 '5년 내 사라지는 일자리 710만개' 명단에 끼워넣어야 

우리 사회에 한 줄기 서광이 비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