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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의 중국이 걷는 길 19] 불의는 참아도 불이익은 못 참는가…시진핑의 신형국제관계

바람아님 2016. 2. 17. 00:37
[J플러스] 입력 2016.02.15 02:39

유상철 기자는 1994년부터 98년까지 홍콩특파원, 98년부터 2004년까지 베이징특파원을 역임했고, 2007년부터 2012년까지 5년 간 중국연구소 소장을 지낸 중국통입니다.

중국은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초강대국으로 성장했습니다. 앞으로 중국은 어떻게 변모해나갈까요. 그에 맞춰 우리는 또 어떻게 적응하고 도전해나가야 할까요.
유상철 기자의 '시진핑의 중국이 걷는 길'은 이같은 질문의 실마리를 찾기 위한 칼럼입니다.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 '시진핑의 중국이 걷는 길'을 업로드할 예정입니다.


한·중 관계가 시험대에 오르고 있다. 얼굴 붉힐 일이 없을 때는 다 좋은 게 좋은 거라는 논리 아래 양국 관계는 그저 ‘하오(好, 좋다) 하오’라는 감탄사를 연발하며 잘 굴러가는 모양새를 취한다.

그러나 ‘친구는 어려울 때 친구가 진짜 친구’라는 말이 있듯이 누군가 곤경에 처했을 때 상대가 이에 대해 어떻게 나오느냐를 보면 대개 그 친구가 말로만 친구인지 아니면 인생을 함께 할 친구인지를 가늠할 수 있다.

최근 북한의 핵과 미사일 실험이 야기한 한반도 긴장 상태를 둘러싸고 한·중 간 골이 자꾸 깊어지는 양상이다. 한국은 대북 제재에 소극적인 중국이 못마땅하기 이를 데 없고 중국은 한국이 들여오려는 사드 체계에 대해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우리로선 중국의 행태를 이해하기 어렵다. 불량배 북한을 전략적 자산이라며 끌어 안은 채 한국의 사드 도입 움직임에 대해선 핏대를 올리는 중국의 모습에서 역시 ‘중국인은 불의(不義)는 참아도 불이익은 못 참는구나’ 하는 우스개 말을 떠올리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 중국이 과연 국제 사회의 리더로 성장할 수 있을까. 중국은 과연 국제 사회의 존경을 받는 가치관을 제시할 수 있을까. 중국은 과연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모습으로 국제 사회의 신뢰를 받을 수 있을까. 많은 의구심이 생길 수 밖에 없다.

시진핑의 중국은 도대체 어떤 국제 관계를 바라는 것일까. 이와 관련해 지난해 봄 시진핑이 처음으로 공식 제기한 ‘신형국제관계(新型國際關係)’를 음미할 필요가 있겠다. 시진핑이 말하는 신형국제관계란 무언가.

이에 앞서 역대 중국 지도자들의 국제관(國際觀)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마오쩌둥(毛澤東)은 이 세상에서 한 바탕 전쟁은 불가피하다고 봤다. 그는 아예 ‘전쟁으로 평화를 유지하겠다(以戰保和)’는 판단 아래 한국전쟁에 뛰어드는 만용(蠻勇)을 부리기도 했다.

그러나 덩샤오핑(鄧小平)은 달랐다. 미국과 소련이 어느 정도 균형을 유지하고 있기에 큰 전쟁은 없을 것이라 판단했다. 세계의 주된 흐름은 평화이며 중국은 이 기회를 최대한 활용해 발전에 나서야 한다고 봤다. 이는 지난 30여 년 동안 중국을 개혁개방의 길로 인도하게 된 사유다.

그렇다면 이제 시진핑은 세상을 어떻게 보고 있나. 오랜 세월 국제사회는 대국(大國)이 세력을 나눠 대치하고 작은 나라는 대국의 어느 한편에 줄을 서는 냉전(冷戰) 구도를 형성했었다.

이후 소련의 해체와 함께 이 냉전 구도가 무너졌지만 적과 나를 구분하는 냉전의 사유는 계속되고 있다고 본다. 가상의 적을 상정하고 이에 대항하기 위해 뭉치는 동맹(同盟) 체제가 아직도 남아 있는 건 바로 이런 이유에서라는 것이다.

시진핑은 따라서 이젠 국제 질서도 ‘시대에 따라 변화해야 한다(與時俱進)’고 주장한다. 그는 세계 모든 나라가 운명 공동체라고 말한다. 승자가 모든 걸 독식하는 시대는 끝났다고 본다.

새로운 국제 질서는 세계 각국 국민의 요구를 모두 만족시킬 수 있어야 한다. 협력(合作)과 윈윈을 핵심으로 하는 새로운 국제 질서인 신형국제관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신형국제관계 속에선 세계 어떤 국가든 그 크기나 강약, 빈부에 상관없이 모두 평등한 대접을 받아야 한다.

또 각국 국민은 자신이 선택한 발전의 길을 걸을 수 있도록 존중 받아야 한다. ‘신발이 발에 맞고 안 맞고는 자신이 신어보면 제일 잘 안다(鞋子合不合脚 自己穿了才知道)’는 게 시진핑의 지론인 것이다.

이 같은 시진핑의 신형국제관계 주장에선 미국에 의한 단극(單極) 질서를 부정하는 냄새를 짙게 느낄 수 있다. ‘승자가 모든 걸 독식하는 시대는 끝났다’고 말하는 건 바로 미국 주도의 국제질서를 부정하는 것이다.

또 세계 각국 국민은 자신이 선택한 발전의 길을 존중 받아야 한다며 특유의 신발론을 제기하고 있는 것은 사회주의 노선을 채택한 중국 등 사회주의 국가를 무슨 색깔혁명 운운하며 흔들지 말라는 경고에 다름 아니다.

특히 동맹은 냉전 사유의 잔재로 세계 각국을 편 가르기 하는 것이란 비난은 미국 중심의 동맹 체제를 직접 겨냥한 것이기도 하다. 이 같은 시진핑의 신형국제관계 주장은 한 마디로 미국의 견제를 피하며 중국이 성장할 시간과 공간을 벌자는 취지가 강한 것이다.

말로는 세계 모든 국가의 발전 운운하고 있지만 실제론 자신의 이익 극대화를 위한 논리 형성에 모든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의(義)보다는 이(利)를 앞세우는 중국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안타까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