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2월 미국이 연방기금 금리를 전격 인상한다. 당장 일본 닛케이지수, 한국 코스피지수, 동남아 국가의 주가지수가 일제히 6% 넘게 하락한다. 미국 증시가 개장했을 때는 국제 자본시장에서 이미 5조 달러가 증발한 뒤다.… 더 큰 폭풍우는 외환시장에서 몰아친다. 엔화·유로화 가치가 3% 이상 하락한다. 위안화는 하한가까지 힘없이 추락한다.”
레이는 지난 두 차례 미국이 일으킨 통화전쟁으로 유럽은 5년, 러시아는 6년, 동남아는 8년, 일본은 15년 불황을 겪었다고 주장한다. 이번엔 중국인데, 패할 경우 짧게는 5년 길게는 10년 불황을 겪게 될 것으로 예상했다. 그는 강한 달러의 3차 공습 시기를 꼭 찍었다. 2015년 말~2016년, 바로 올해다. 미국의 선봉장으론 조지 소로스를 꼽았다. 그의 불길한 예언 몇 가지가 딱 들어맞은 셈이다. 시나 닷컴 경제 칼럼니스트인 그의 글을 중국 정부는 ‘정책 결정자에게 참고 가치가 있는 자료’로 선정하고 있다.
소로스와 함께 위안화를 공격 중인 ‘금융 늑대’ 카일 베스는 한술 더 뜬다. 헤지펀드 헤이먼의 대표인 베스는 수십억 달러를 위안화 하락에 베팅했다. 그는 지난달 주주에게 보낸 e메일에서 “위안화 가치가 앞으로 18개월 동안 약 40% 가까이 하락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유도 조목조목 분석·설명했다. 중국 은행 시스템에 지난 10여 년간 34조 달러짜리 거품이 생겼는데 이걸 해소하는 데 3조5000억 달러의 손실이 불가피할 것이란 게 요지다. 3조5000억 달러는 금융위기 때 미국의 은행 시스템이 기록한 손실 6500억 달러의 다섯 배가 넘는다. 그러니 어찌 위안화가 곤두박질하지 않고 버틸 수 있느냐는 것이다.
문제는 위안화지만 걱정은 원화다. 원화는 요즘 위안화의 ‘프록시(Proxy·대리) 통화’로 불린다. 중국 경제 의존도가 그만큼 높아졌다는 의미다. 올 들어 원화 값은 위안화에 따라 춤추고 있다. 위안화와의 상관계수는 0.87까지 치솟았다. 사실상 위안화와 연동돼 있다는 얘기다. 심지어 위안화 값이 하락할 것으로 예상해 미리 원화 값이 떨어지기도 한다. 지난 주말 원화 값이 급락한 것도 그래서다. 한국은행과 기획재정부가 동시에 구두개입 해 잠시 진정시키기는 했지만 원화 값 하락세를 돌이키진 못했다.
“원화에서 탈출하라”는 구호도 잇따르고 있다. 모건스탠리는 며칠 전 원화를 매도통화 우선순위에 올렸다. 역시 ①중국 경제와 상관관계가 높다. ②글로벌 무역에 의존한다. ③가계부채가 많다는 게 이유다. 프랭클린템플턴은 지난달 원화 국채를 2조원어치 넘게 팔았다. ‘위안화가 위험해지면 원화도 무사할 수 없다’는 프록시 통화의 ‘대리인 등식’이 국제 금융시장에 퍼지고 있는 것이다.
되레 위안화는 버틸 수 있을 것이다. 미 재무장관을 지낸 로런스 서머스는 “금융에도 공포의 균형이 존재한다”고 했다. ‘핵전쟁은 공멸을 초래하기 때문에 핵무기 보유가 오히려 핵전쟁을 억제한다’는 공포의 균형(balance of terror)에 빗댄 것이다. 중국 경제가 완전히 망가지면 미국도 견디기 어려운 타격을 받을 수 있다. 미국이 중국을 몰아붙인들 공멸의 선까지는 넘지 않을 것이란 얘기다.
애꿎게 당할 운명인 원화만 불쌍하게 됐다. 지난 주말 한국은행 이주열 총재는 “봄인데 봄 같지 않다(春來不似春)”고 했다. 시절은 봄인데, 원화의 봄은 영 올 기미가 없다. 엎친 데 덮친 격, 북핵까지 부채질한다. 이럴 때 충격 한 번 제대로 받으면 정말 제2의 외환위기가 올 수 있다. 다시 한 번 우리의 재산을 헐값에 눈물과 함께 팔아치워야 할지 모른다. 그런데도 이 나라의 지도자들은 아무 위기 의식이 없다. 위기 의식이 없는 군대는 나라를 지킬 수 없고 위기 의식 없는 경제팀은 국부를 지켜낼 수 없다.
이정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