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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ly BIZ] 마이너스 금리는 '악마의 유혹'

바람아님 2016. 2. 28. 00:47
조선일보 : 2016.02.27 03:04

지금의 경제는 '대차대조표 불황'
경제주체들, 빚 많아 수요 부진 장기

스티븐 로치(예일대 교수)
스티븐 로치(예일대 교수)

중앙은행들이 '마이너스 금리'라는 필사적인 조치를 내놓고 있다. 경기 부양을 위해 중앙은행들은 처음에는 제로 금리를, 다음에는 양적 완화를, 지금은 마이너스 금리를 도입했다. 앞선 조치가 효과가 없으면 다른 조치를 내놓는 식이었다. 결과적으로 제로 금리와 양적 완화는 의미 있는 경기 회복을 이끌어내지 못했다. 마이너스 금리는 어떨까. 마이너스 금리는 금융시장의 불안정성을 키우고, 또 다른 위기의 단초가 될 수 있다.


마이너스 금리는 지난 2014년 유럽 일부 국가에서 시작됐다. 일본은 올해 마이너스 금리 대열에 합류했다. 마이너스 금리의 적용은 중앙은행들에 주요한 전환점이 될 것이다. 과거에는 대출 비용을 낮추고 금융자산의 가치를 높이는 방법으로 부의 효과(자산 가치가 오르면 소비 증대로 이어지는 것)가 생겨나고, 결국 총수요가 늘어난다고 봤다. 마이너스 금리는 시중 은행들이 과도한 지급준비금을 예치하는 데 일종의 벌칙을 부과하는 것이다. 은행 입장에서는 수요에 상관 없이 새로운 대출을 해줄 것을 강요받는 셈이다.

그러나 마이너스 금리는 금융 위기 이후 세계경제를 괴롭히는 요인이 무엇인지에 대한 본질을 놓치고 있다. 리처드 쿠 노무라증권 수석 이코노미스트가 일본에 대해 주장하는 것처럼 위기 이후의 경제를 진단할 때에는 '수요'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위기를 겪은 경제들은 '대차대조표 불황'을 겪게 된다. 대차대조표 불황이란 과도한 빚을 진 경제주체들이 소비 지출을 자제하고, 빚 갚기에 나서면서 수요 부진이 장기간에 걸쳐 이어지는 현상을 가리킨다. 결과적으로 대차대조표 불황을 겪게 되면 경제성장 여력이 훼손된다.

대차대조표 불황의 대표적인 예가 일본이다. 일본은 지난 24년간 국내총생산(GDP)이 0.8% 늘어나는 데 그쳤는데 아베노믹스 이후로도 경제 상황을 반전시키지 못했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미국의 소비자 수요는 지난 8년 동안 연평균 1.5% 성장에 머물렀고, 불황의 원인이 됐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의 상황은 더 나쁘다. 유로존의 실질 GDP 성장률은 2008년부터 2015년까지 평균 0.1%를 약간 웃돈 수준이다.

마이너스 금리는 '악마의 유혹'
/김의균 기자

중앙은행은 경제의 총수요를 활성화시킬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가 거의 20년 전에 얘기했던 것처럼 중앙은행이 빠진 딜레마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일본이다. 1990년대 초 일본 주식시장과 부동산시장의 버블이 터졌을 당시 일본 경제 시스템을 무너뜨린 것은 바로 과도한 부채였다.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저축을 하지 않는 미국의 소비자들도 마찬가지다. 포르투갈, 이탈리아, 아일랜드, 그리스, 스페인 등 주변 국가의 경제성장을 기대하면서 부채를 끌어들였던 유로존은 말할 것도 없다. 앞서 말한 모든 사례에서 대차대조표상 부채를 줄이려는 노력 때문에 경제의 총수요는 다시 늘어나지 못했다.

마이너스 금리는 중앙은행의 가장 큰 실책이 될 수도 있다. 앨런 그린스펀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전(前) 의장은 2000년 닷컴 버블 이후의 혼란을 막기 위해 강력한 통화 완화 정책을 사용했다. 그린스펀 덕분에 그의 후계자는 나락으로 이르는 길에 서게 됐다. 지난 2008년 후반 글로벌 금융 위기 당시 쓸 수 있는 총알이 빠르게 소진되자 벤 버냉키 전 연준 의장은 양적 완화라는 놀라운 신약을 사용했다. 양적 완화는 강력한 해독제였지만, 결국 소비자의 대차대조표 구멍을 메우지는 못했고, 회복을 촉진하지도 못했다.

지난 2012년 "유로존을 구하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하겠다"는 약속을 했던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의 정책 역시 같은 전철을 밟았다. ECB는 제로 금리, 양적 완화, 마이너스 금리를 차례로 도입했다. 마찬가지로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도 마이너스 금리를 선택했고, 일본은행은 물가 상승률 2%를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2017년 중반까지로 미뤘다.

이제 미 연준만 남았다. 미 연준은 마이너스 금리의 유혹에 저항할까. 대다수 중앙은행은 정책 금리를 제로보다 높게 유지하는 전통적인 통화정책과 양적 완화, 마이너스 금리 같은 비전통적 통화정책이 별다른 차이가 없다는 잘못된 믿음을 고수하고 있다.

전통적인 통화정책의 시대에는 정책의 파급 경로가 대출금리를 통해 주택 건축, 자동차, 기업의 자본 투자 부문 등 대출에 민감한 실물경제 부문에 영향을 미쳤다. 기준금리가 오르고 내릴 때 실물경제가 반응하면서 소위 승수효과(경제활동이 계속 파급효과를 내는 것)라는 것이 생겨나고, 승수효과는 자산 시장에서 경제주체들이 누리는 실질적, 심리적 이득에 의해 종종 강화됐다. 하지만 그런 시대는 이제 지나갔다. 비전통적 통화정책의 시대엔 정책 효과는 주로 자산 시장에서 나타나는 부의 효과에 의존한다.

이러한 접근법에서는 두 가지 심각한 문제가 있다. 첫째는 중앙은행들이 금융 불안정의 리스크를 무시했다는 것이다. 중앙은행들은 낮은 물가 상승률을 보고 너무 안심했고, 지나치게 완화적인 통화정책을 실시했다. 그 결과 자산과 신용 시장에서 대규모 버블이 생겼다. 결국 버블이 터지고 이것이 경제를 대차대조표 불황으로 밀어넣자 물가를 중시하는 중앙은행들은 제로 금리와 양적 완화를 택했다.

둘째는 자산 시장의 거품을 잘못 판단한 정치인들이 재정을 통한 경기 부양을 선택하는 것을 꺼렸다는 점이다. 이로써 유동성 함정에서 탈출할 유일한 길이 닫혔다. 재정의 지원이 없자 중앙은행들은 버블을 낳기 쉬운 금융시장에 더 많은 유동성을 공급할 수밖에 없었다.

마이너스 금리는 더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전 세계 경제 총수요가 지속적으로 부진한 상황에서 신규 대출을 하지 않는 은행들에 벌칙을 가하면 새로운 위험이 발생할 수 있다. 이는 1990년대에 일본의 대출자들을 지급 불능 상태로 만든 무분별한 대출처럼 또 다른 '좀비 대출'의 등장을 촉진하는 것과 같다. 길을 잃어버린 중앙은행들은 위기에 처해 있다. 세계경제가 이들 없이 갈 수 있을까?

스티븐 로치(예일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