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마이너스 금리, 과유불급의 교훈
한국경제 2016.03.10. 17:55문제는 처방이다. 원래는 완화적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을 잘 섞어서 치료해야 하는데 많은 국가가 과거에 국가부채를 방만하게 늘린 바람에 확대 재정정책이라는 좋은 처방은 실행하기 힘들어졌다. 그러다 보니 팽창적 통화정책이라는 단일 처방으로 위기라는 질병을 치료해야 하는데 바이러스가 워낙 세기 때문에 백신 처방도 더욱 강해지고 있다. 양적 완화에다 마이너스 금리라는 비(非)전통적 처방이 나왔는데, 문제는 이로 인해 통화부문에 과부하가 걸리면서 백신의 부작용도 심각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양적 완화정책은 금리가 제로(0) 수준이 돼도 계속 통화를 늘리는 정책이다. 이때 통화 발행은 주로 은행들이 보유한 다양한 채권을 중앙은행이 사들이고 채권대금을 지급하는 형태로 실행된다. 은행들에 화폐가 공급되면서 은행들은 유동성이 풍부해져 상태가 양호해졌다. 문제는 이렇게 유동성을 공급받은 은행들이 적극적으로 대출을 집행하기 시작하면서 부실대출이 늘어났다는 점이다. 물론 은행들이 일단 적극적으로 대출을 집행해야 돈이 돌면서 경기가 부양된다. 그러나 경기 호전이 늦어지면 거꾸로 부실대출이 증가하면서 은행들의 수익성과 건전성이 훼손된다. 딜레마적 상황이 온 것이다. 이제 유럽을 중심으로 금융회사 주가는 폭락하고 또 한 번의 금융위기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마이너스 금리라는 정책 처방도 문제다. 마이너스 금리정책은 시중은행이 중앙은행에 자금을 예치하면 금리를 지급하지 않고 보관수수료를 떼는 정책이다. 자금을 중앙은행에 예치하지 말고 시중에 유통시키라는 강력한 신호다. 하지만 양적 완화로 인해 늘어난 엄청난 자금을 시중에 전량 유통시키는 것은 매우 어렵다. 금리 수준이 마이너스가 되면서 예금이자와 대출이자는 대폭 낮아지고, 예대마진은 현저히 줄고 있으며, 은행 수익성은 더욱 나빠지고 있다. 마이너스 금리를 도입한 덴마크와 스웨덴은 은행들이 부동산 담보대출을 적극적으로 집행하기 시작하면서 부동산 버블로 인한 위기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물론 비전통적 통화정책을 통해 화폐 발행을 화끈하게(?) 늘리면 자국 통화가치가 낮아지면서 자국 기업의 수출에 유리한 환경이 조성되지만, 이는 주요 국가 간에 환율전쟁을 유발시키면서 국가 간 갈등은 고조되고 효과는 줄어든다.
한국은 어떤가. 한국 경제 내에서도 부실대출이 증가하고 있고 금융회사들이 중심이 돼 기업 및 산업 구조조정을 단행해야 하는 상황이 왔다. 일각에서는 위기 극복을 위해 양적 완화나 마이너스 금리 정책 시행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들린다. 하지만 이런 정책들은 금융회사의 수익성과 건전성에 엄청난 부담을 줄 수 있고, 그렇지 않아도 수익 기반이 취약한 국내 금융회사들이 엄청난 타격을 받을 수 있다. 추가 금리 인하를 통한 전통적 접근은 몰라도 비전통적 처방은 비기축통화국인 한국으로서는 매우 조심해야 할 필요가 있다.
위기 극복을 위한 처방들이 금융회사에 타격을 주고 오히려 금융회사발(發) 위기 가능성을 고조시키는 모습을 보면서 이번 위기가 얼마나 크고 복잡한 양상을 지니는지 새삼 느끼게 된다. 또 이번 위기에 대한 대응과정을 보면서 위기 극복도 재정정책과 통화정책, 그리고 각종 미시적 정책의 적절한 조합을 통해 적절하게 다변화되고 균형 있게 시행돼야 한다는 교훈도 얻게 된다. 바이러스가 워낙 센 상황에서 비전통적 통화정책까지 도입하면서 한 가지 백신을 가지고 병을 치료하다 보니 백신의 효능은 강해졌지만 부작용도 커져 버렸다. 이제 약효가 좋다고 함부로 사용하면 백신의 부작용으로 인해 인체가 망가질 지경이 돼 버린 것이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말이 자꾸만 떠오르는 요즈음이다.
윤창현 < 서울시립대 교수·공적자금관리위원회 민간위원장>
초강력 부양카드 총동원한 유럽
한국일보 2016.03.10. 22:55더 불 붙게 된 통화전쟁
유럽중앙은행(ECB)이 경기부양을 위해 마이너스 금리를 더 낮추고 양적완화(QE) 규모 역시 더 확대했다. 경기부양을 위해 가용할 수 있는 카드를 총동원한 것이다. 자국 통화가치를 낮추기 위한 글로벌 통화전쟁도 더욱 가속화할 전망이다.
ECB는 10일(현지시간) 정례 통화정책회의를 열어 현재 -0.3%인 중앙은행 예치금리를 0.1%포인트 더 낮춘 -0.4%로 인하했다. 기준금리는 0.05%에서 제로(0%)로, ECB 한계대출 금리도 0.30%에서 0.25%로 낮추는 등 3대 정책금리를 모두 인하했다.
양적완화, 즉 월평균 자산매입 규모도 4월부터 현재(600억유로)보다 200억유로 늘린 800억유로로 확대하기로 결정했다. 자산 매입 대상에 국채, 자산유동화증권(ABS) 외에 회사채도 새롭게 포함시키기로 했다. 오는 6월 종료되는 4년 만기 목표물 장기대출 프로그램(LTRO)도 재가동하기로 했다.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는 회의 뒤 기자회견에서 “추가 양적완화를 최소 내년 3월까지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ECB는 강력한 통화완화 조치로 풀린 돈이 주식시장으로 유입돼 유동성 장세가 연출되고, 지난달 다시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마이너스(-0.2%)를 기록하며 커지고 있는 디플레이션 불안감도 잠재울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프레데릭 듀크로제 팍텟 이코노미스트는 “상당히 강력한 수단”이라고 평가했다. 시장은 즉각 반응했다. ECB의 추가 부양책 발표 후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 유럽 주요국 증시는 장중 2~3%대 급등세를 보였다.
하지만 이번 추가 완화책 역시 효과는 미미할 거란 시각도 적지 않다. 반면 ‘은행 예금 이탈→은행 수익성ㆍ유동성 악화 및 은행 대출능력 저하→기업 부담’ 등으로 이어지는 부작용 우려가 나온다. 안드레아스 트레이츨 오스트리아 에르스트 은행 최고경영자(CEO)는 “마이너스 금리 확대는 시장의 혼란을 가중시키고 금융 거품을 야기할 것”이라고 말했다.
ECB가 경기 부양을 위해 과감한 조치를 선택하면서 다음 주 통화정책회의가 열리는 미국과 일본 중앙은행의 고민도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ECB의 돈 풀기는 유로화 약세로 이어지는 만큼 자국 통화의 상대적 강세를 막기 위한 맞대응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시장에서는 지난 달 마이너스 금리를 선택한 일본 역시 마이너스 금리 폭을 더 높이고, 미국은 기준금리 인상을 늦출 거라는 시그널을 보낼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변태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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