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상철 기자는 1994년부터 98년까지 홍콩특파원, 98년부터 2004년까지 베이징특파원을 역임했고, 2007년부터 2012년까지 5년 간 중국연구소 소장을 지낸 중국통입니다.
중국은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초강대국으로 성장했습니다. 앞으로 중국은 어떻게 변모해나갈까요. 그에 맞춰 우리는 또 어떻게 적응하고 도전해나가야 할까요.
유상철 기자의 '시진핑의 중국이 걷는 길'은 이같은 질문의 실마리를 찾기 위한 칼럼입니다.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 '시진핑의 중국이 걷는 길'을 업로드할 예정입니다.
노동자·농민의 천국을 만들겠다며 중화인민공화국을 건설했건만 건국 30년이 됐는데도 중국의 궁핍한 상황은 하늘을 찔렀다. 하루는 한 고위 관리가 민정 시찰을 나섰다. 허름한 가옥의 방문을 열고 들어가니 딸 둘과 함께 이불을 쓰고 앉아 있는 노인이 일어나지도 않고 손님을 맞는 게 아닌가.
사연인즉 엄동설한에 바지 한 벌 제대로 없어 딸들과 같이 나눠 입느라 벗고 있었던 탓이었다. 이 같은 상황에 직면한 덩은 ‘가난이 사회주의는 아니지 않은가’라며 부자가 될 수 있는 사람 먼저 부자가 되라고 독려했다. 이른바 선부론의 출현이다.
한데 어떻게 부자가 되라는 말은 안 했나 보다. 이후 중국엔 부자가 되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이가 속출했다. 특히 고위 당원의 자제나 친인척이 권력을 이용해 치부하는 경우가 많았다. 권력과 금전이 한데 어우러져 부패의 앙상블을 연주하는 권전교역(權錢交易)이 대표적인 케이스다.
시진핑의 반부패 운동이 중국 인민의 열화와 같은 지지를 받고 있는 건 그만큼 부패가 심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한데 최근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가 폭로한 조세피난처에 페이퍼 컴퍼니를 설립한 사람들 중 시진핑의 매형인 덩자구이(鄧家貴)의 이름이 거론돼 시진핑은 물론 중국 국가 자체를 난처하게 만들고 있다.
시진핑은 위로 두 명의 누나가 있다. 옌안(延安)의 차오얼거우(橋兒溝)중앙의원에서 태어나 차오차오(橋橋)란 이름을 가진 큰 누나와 시안(西安)에서 출생해 안안(安安)이란 이름을 갖게 된 작은 누나가 바로 그들이다. 이들은 어머니 치신(齊心)의 성을 따 치차오차오와 치안안으로 불린다.
시진핑은 형제자매 가운데 큰 누나 치차오차오를 가장 존경한다고 말한다. 자신의 직장을 포기하고 아버지 시중쉰(習仲勳)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11년 간 수발을 들 정도로 효심이 깊었던 까닭이다.
2002년 시중쉰이 타계한 뒤 직업이 없었던 치차오차오는 이듬해부터 생계를 위해 부동산업계에 뛰어든다. 그리고 함께 뛴 이가 남편인 덩자구이다. 사업 수완이 좋았는지 아니면 관시(關係)를 이용했는지, 또는 운이 좋았는지 모르겠지만 사업은 성공했다. 블룸버금 통신이 2012년 보도한 바에 따르면 덩자구이 일가의 재산이 7억6000만 달러에 이른다고 했으니 말이다.
지난해 뉴욕타임스는 또 덩자구이 부부가 과거 완다(萬達)그룹 자회사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 완다그룹의 왕젠린(王健林) 회장은 덩 부부가 주식 공개 이전에 주식을 모두 처분해 사실상 막대한 이익을 포기했다고 밝힌 바 있다.
시진핑이 중국의 지도급 인사로 부상할 무렵 어머니 치신은 가족 회의를 열었다고 한다. 가족들 모두 상업계에서 손을 떼라는 엄명이었다. 중요한 공직을 맡게 될 시진핑에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한 판단이었다.
그럼에도 덩자구이의 행보와 같이 과거에 있었던 흔적은 지워지지 않고 계속 따라 다니며 시진핑 명성에 흠을 내고 있다. 중국에 금도 순금은 없다는 말이 있다고 한다. 완벽하기란 이처럼 어려운 일인가 보다.
유상철 중앙일보 중국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