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6.05.23 이길성 베이징 특파원)
문화대혁명 종료 2년 뒤인 1978년 11월 24일 밤.
중국의 한 농촌에서 농부 18명이 비밀리에 모여 생사(生死) 협약을 맺었다.
'농지를 집마다 나누고 이 중 정부와 사업 단위에 바치는 것을 제외한 나머지는 각자 몫으로 한다.'
공산당의 공동 노동·공동 분배 이념에 반하는 목숨 건 '사유화' 시도였다.
실제로 이들은 협약이 들통나 죽거나 감옥 가는 이가 생기면 그 아이들을 18세가 될 때까지
남은 사람들이 길러주기로 했다.
그날 밤 이후 마을은 달라졌다. 겨울만 되면 구걸로 연명하던 마을에 집집이 곡식이 쌓였다.
현장을 찾아 변화를 눈으로 확인한 성(省) 서기는 "생각만 할 뿐 감히 누구도 시도하지 못한 일을 했다"며 감격했다.
마오쩌둥(毛澤東)의 허울 좋은 집단화로 망가진 농촌을 살릴 방법을 헐벗고 굶주리던 농부들이 내놓은 것이다.
'중국 농촌 개혁 제일촌(第一村)'으로 불리는 안후이성(安徽省) 샤오강촌(小崗村) 이야기다.
이 마을의 현재 모습이 지난달 관영 CCTV에 등장했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중국 전역에 '개혁의 중요성'을 다시 일깨우기 위해 이곳을 찾으면서다.
그런데 TV에 나온 마을은 전혀 부촌(富村)으로 보이지 않았다. 농민들의 옷은 남루했고, 집은 토굴 같았다.
샤오강촌을 앞서 찾았던 중국 경제학자들 반응도 다르지 않았다.
그들은 논문에서 "솔직히 우리가 상상했던 개혁 발원지의 풍경이 아니었다"고 털어놓았다.
지금 중국 농촌의 최고 부촌은 샤오강촌이 아니라 장쑤성(江蘇省)의 화시촌(華西村)이다.
화시촌은 샤오강촌과 정반대로 개인보다 집단을 우선시하는 가치관으로 유명하다.
일부 중국인은 화시촌의 성공을 근거로, 사회주의의 우월성을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중국의 전문가들은 '체제'가 아닌 '리더십' 차이가 두 마을의 명운을 갈랐다고 말한다.
"농업만으로는 부자가 될 수 없다"고 선언한 화시촌장 우런바오(吳仁寶·1928~2013)의 미래를 내다보는 리더십이
샤오강촌엔 없었다는 것이다. 샤오강촌은 전국에서 자신들을 배우려는 행렬이 이어지고 당·정부의 지원이 계속되자
농업에 안주한 나머지 '살아있는 박제'가 되고 말았다.
반면 화시촌은 농업을 탈피해 마을 주민들이 공동 투자한 기업을 잇달아 세웠다.
단순 제조업에서 출발해 과학 기술이 접목된 산업으로, 다시 관광산업으로 부단히 옮겨가며 새 먹거리를 개발했다.
그걸 주도한 이가 1957년 부임한 우런바오였다.
그가 세상을 뜬 2013년 주민들의 연평균 소득은 전국 농촌 평균의 20배가 넘는 8만8000위안(약 1580만원)이었다.
지난 세기 세계에서 최고속으로 배고픔과 결별한 한국은 냉전시대 자본주의의 우월함을 증명하는 아이콘이었다.
서구 선진국들은 '장하다'며 머리를 쓰다듬었고 개도국들은 우리를 배우러 왔다.
하지만 요즘 한국을 보면, 과연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한 비전과 그 길로 이끌 리더십이 우리에게 있는지 묻게 된다.
시진핑이 샤오강촌에서 시효가 지난 해법을 만지작거린 것처럼,
우리도 반세기 전 배고픔을 벗어나기 위해 써먹은 리더십을 여전히 유효하다고 믿는 것 아닌가.
중국 두 시골 마을의 명암을 우리 정치·경제 리더들이 깊이 연구해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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