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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유석 판사의 일상] 조선왕조실록에서 배울 수 있는 것

바람아님 2016. 6. 15. 00:32
[중앙일보] 입력 2016.06.14 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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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유석
판사·『개인주의자 선언』 저자


조선왕조실록은 귀한 보배다. 수백 년 전 시대의 고민들을 생생하게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들이 범하는 어리석음은 반복되기 마련이기에 과거는 미래를 위한 교과서다. 박시백 화백 덕에 누구나 쉽게 실록에 입문할 수 있다. 고마운 일이다. 실록에서 인상적인 것은 사극에서의 이미지와 달리 의외로 쇠퇴기 왕들도 나름의 선의는 가지고 있었다는 점이다.

정조 개혁정치를 뒤엎고 반동의 시대를 시작한 정순대비는 6만6000명의 노비를 전격적으로 해방시켰다. “공공재산을 횡령하거나 교묘한 이름을 붙여 백성에게 거두는 자는 유배하거나 금고시키고 사면할 때에도 풀어주지 말아라.” 순조 1년에 내려진 대비의 하교다. 대비의 수렴청정이 끝난 후 순조 역시 수령의 탐욕을 징계하기 위한 어사 파견과 흉년에 따른 백성 구휼 등 민생 정치에 힘썼다.

안동 김씨 천하를 만든 순원왕후 수렴청정기에도 왕후는 끊임없이 탐관오리의 수탈을 막으려 했다. “수령을 각별히 가려 뽑지 않는다면 내 손으로 사경을 헤매는 백성을 죽이는 것이다.”(헌종 2년) 백성의 현실을 알던 강화도령 철종은 삼정의 문란을 혁파하고자 개혁기구인 삼정이정청을 설치했다. “탐관오리의 해로움은 홍수나 맹수보다도 심해 백성을 수탈하고 파산시켜 가며 자신을 살찌우니….”(철종 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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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가지 놀라운 점은, 이 모든 선의는 소용이 없었다는 점이다. 개혁기구의 구성원은 개혁 대상인 세도가들이었고 이들은 ‘환곡은 수백 년간 행해져 온 법인데 하루아침에 폐지해 버리기는 애석하다’는 등의 의견을 내놓았다. 암행어사가 내려가면 보통 한 도의 수령들 중 3분의 1가량을 탄핵하고 이 중 상당수가 유배를 가지만 새 왕 즉위, 왕비 책봉, 세자 책봉 등에 따르는 사면으로 대부분 풀려났다. 대비와 왕들이 맹수보다 해롭다던 수령들은 실은 그 자리를 얻기 위해 대비와 왕들의 오빠, 외삼촌, 그의 첩 등에게 바친 뇌물을 회수하기 위해 더 그악스럽게 백성을 수탈하고 있었다. 사대부의 나라인 조선은 사대부들에게 끝없이 관대했다. 심지어 세종대왕조차 백성이 수령을 고발하면 곤장 100대에 처한다는 수령고소 금지법을 시행했다. 상하를 분명히 하는 것이 탐관오리 적발보다 중했기 때문이다.

주변을 보면 특별히 나쁜 사람은 흔치 않은데 왜 세상은 이럴까 의문을 가져본 적이 있는가. 세상의 비극은 꼭 악의 때문에 생겨나는 것만은 아니다. 철저하지 못한 선의는 악의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문유석 판사·『개인주의자 선언』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