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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유석 판사의 일상有感] 문명의 위기는 어디로부터 오는가

바람아님 2016. 9. 25. 09:37

(중앙일보 2015.12.01 문유석 인천지법 부장판사)


기사 이미지샤를리 에브도 테러파리 테러는 모두 프랑스에서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서구 문명에 대한 공격이라는 상징적 의미가 크다. 
자유·평등·박애라는 프랑스 대혁명 정신을 토대로 수세기에 걸쳐 유럽은 인류 역사상 최고 
수준의 진보한 사회를 건설했다. 
넘치는 자유, 다양성의 존중, 민주주의, 높은 수준의 복지. 그런 사회 내부에서 성장한 
이민자 자녀들이 사회에 대한 증오를 토대로 극단주의 테러리스트가 되었다. 이들의 공격은 
서구 문명이 건설해 온 소중한 가치들이 모래성처럼 취약했다는 것을 드러내고 말았다.

 1인 1표의 보통선거 원칙은 왕의 목을 자르며 피로 얻어낸 공화국의 근간이다. 
그런데 아이를 많이 낳는 무슬림 이민자들과 아이를 낳지 않는 백인 가정의 미래를 비교하면 이 신성한 원칙은 공포증의 
원인이 된다. 그 공포증의 세련된 버전이 미셸 우엘베크의 소설 『복종』이다. 
프랑스 대선에서 극우 국민전선이 선두를 질주하자 이를 견제하기 위해 기존 좌우파가 어쩔 수 없이 이슬람 정당과 손을 
잡게 되어 이슬람 지도자가 대통령으로 당선되고 일부다처제 허용 등 프랑스 무슬림화가 진행된다는 내용이다.

 기사 이미지정부가 제3세계 원조 규모를 축소하자 시민들이 반대 시위를 벌일 정도로 연대의식이 
투철하던 북유럽 국가들에서도 경기침체가 계속되면서 반이민 정책을 내세운 
극우정당들이 약진해 집권 연정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꼬마 쿠르디의 죽음이 불러일으킨 인도주의는 파리 테러까지 두 달짜리였고 난민에 
대한 반감은 다시 고조되고 있다.
유럽이 누렸던 자유와 평등·관용·복지국경이라는 장벽 내에서 동질적 국민끼리 
향유하는 것이었기에 국경이 무력해지면 함께 무력해지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해법은 장벽을 더 높이높이 쌓는 것일까? 
장벽을 허물고 세계를 평평하게 만들어 온 것은 서구 문명의 경제적 토대인 자본주의다. 
자본은 쉴 틈 없이 경계를 해체하며 새로운 시장과 싼 노동력, 풍부한 자원을 확보하려 한다. 
저커버그가 드론을 띄워 아프리카 오지까지 인터넷을 제공하듯 말이다. 
장벽을 쌓으면 결국 번영도 한계에 봉착한다. 
장벽을 쌓고 먼 곳에 있는 테러리스트를 겨냥해 보내는 폭격기들의 ‘부수적 피해’, 즉 민간인 희생자들에 대한 분노는 
제거한 테러리스트 숫자보다 훨씬 많은 자생적 테러리스트들을 새로 공급한다. 
결국 서구 문명이 건설한 가치 자체가 문제였을까. 
아니면 그것을 장벽 내에서 자기들만 누린 것이 문제였을까. 
어느 쪽을 문제로 보느냐에 따라 해답도 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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