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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유석 판사의 일상有感] 미스라는 호칭 속에도 숨어 있는 차별

바람아님 2016. 11. 29. 23:30
[중앙일보] 입력 2016.11.29 01:00
문유석 판사·『개인주의자 선언』 저자

문유석 판사·

『개인주의자 선언』 저자


디제이 디오씨(DJ DOC)의 26일 광화문 문화제 공연이 취소된 일이 화제다. 현 시국을 비판한 그들의 신곡 ‘수취인 분명’ 가사 중 ‘미스 박’ 등의 표현에 관해 일부 여성단체에서 문제를 제기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과연 ‘미스’가 여성 혐오적 표현이냐는 논란이 있다. 공교롭게도 나는 ‘미스 함무라비’라는 소설을 쓰면서 이런 논란을 묘사한 적이 있다. 주인공인 열혈 정의파 초임 여판사에 대해 네티즌들이 ‘미스 함무라비’라는 별명을 붙이는데 주인공은 이를 성차별적 호칭이라며 싫어하는 장면이다.

그렇다. ‘미스’는 성차별적 호칭이다. 남성은 결혼 여부와 관계없이 미스터(Mr)인데 여성에게만 결혼 여부에 따라 미스(Miss)·미시즈(Mrs)를 구분하고, 전자 뒤에는 아버지의 성을, 후자 뒤에는 남편의 성을 붙이는 서구 가부장제의 산물이다. 그래서 ‘미즈(Ms)’를 비롯한 대안적 호칭이 제안돼 온 지 오래다.

하지만 그 자체로는 직접적 혐오 표현이라기보다 일상 속에 공기처럼 편재해 무심하기 쉬운 차별적 용어에 가깝다. 사용하는 맥락에 따라 보다 모멸적 의미를 지닌다. 커피나 타 오는 존재로 취급받아 온 많은 직장의 ‘미스’들처럼.
 

논란이 된 노래 가사는 우리나라에서의 ‘미스’의 어감을 가장 막강한 권력자와 결부시킴으로써 권력에 대한 도전 및 비판을 시도하려는 의도이지 여성 혐오를 목적으로 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하지만 동시에 왜 굳이 그런 방식으로 권력 비판을 수행해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 제기 역시 경청해야 한다. 그 또한 맥락이 있기 때문이다. 근래 광장에 이보다 훨씬 심한 여성 혐오적 언어들이 넘쳐나고 있다. 속 시원한 분노의 표출이라지만 자칫 곁에 서 있는 동료 시민에게 성적 모욕감을 줄 수 있고, 문제의 본질을 왜곡할 수 있다.

민주주의는 원래 일사불란할 수 없다. 광장에 백만의 시민이 있으면 백만의 의견이 있다. 일상화된 차별과 혐오에 상처받고 예민해질 수밖에 없는 이들의 의견이 있고, 그보다는 창작자의 전체적 의도에 공감하면서 광장에서 함께하길 바라는 이들의 아쉬움도 있다. 일단 비판을 담담히 수용하고 공연을 취소당한 거리에 시민의 한 사람으로 선 왕년의 ‘악동’의 의견도 있다.

다른 의견들을 솔직히 드러내고 치열하게 부딪치되 이를 계기로 상대의 입장에 대해 한 번 생각해 볼 기회를 갖고 차이를 좁혀 가는 것이 민주주의일 것이다.

문유석 판사·『개인주의자 선언』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