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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경철의 히스토리아] [2] 핵(核)미사일

바람아님 2013. 7. 8. 18:04


2차 대전 이후 핵전쟁 발발에 가장 가까이 갔던 때는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였다. 당시 케네디 대통령 밑에서 
국방부 장관을 지냈던 로버트 맥나마라(Robert McNamara)는 다큐멘터리 필름 〈전쟁의 안개〉에서 이 사건의 
내막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미국의 바로 코앞인 쿠바에 친(親)소련 정권이 들어서자 CIA는 이 정권을 붕괴시키기 위해 쿠바 출신 
망명자들에게 군사훈련을 시킨 후 피그스만으로 침투시켰으나 실패로 끝났다. 

미국의 재침(再侵) 위협을 느낀 쿠바는 소련의 핵미사일을 몰래 들여와서 배치했다. U-2 정찰기로 찍은 
첩보사진을 통해 뒤늦게 이 사실을 확인한 케네디 정부는 함대를 동원하여 쿠바를 봉쇄하며 압박해 나갔다.

그야말로 핵전쟁 직전까지 가는 아슬아슬한 상황에 이르렀다가, 터키에 배치한 미국 핵미사일과 쿠바에 배치한 
소련 핵미사일을 함께 철수하기로 함으로써 다행히 위기를 넘겼다.

그로부터 30년 뒤인 1992년, 쿠바를 방문해서 카스트로를 직접 만난 맥나마라는 미사일 위기 당시의 사정을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 그때 무려 162기의 핵미사일이 배치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듣고는 새삼 대경실색했다.

그는 카스트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만일 미국이 공격해 오면 소련 총리 흐루시초프에게 핵미사일 발사를 
요청하려 했는가? 또 실제로 핵미사일을 발사했다면 쿠바는 어떻게 되었으리라고 생각하는가? 이에 대한 
카스트로의 대답은 실로 충격적이었다.

그는 이미 흐루시초프에게 핵미사일 발사를 요청해 놓은 상태였고, 만일 미국이 공격했다면 실제로 핵 공격을 
감행했을 것이라고 했다. 만일 그렇게 했다면? 쿠바는 완전히 파괴되고 지상에서 사라졌을 것이다. 
물론 뉴욕워싱턴을 비롯한 미국 전역에도 핵미사일이 떨어졌을 테고, 미국과 소련 사이에 핵전쟁이 일어나서 
세상은 아비규환이 되었을 것이다.

인간의 불완전성과 핵무기가 결합할 때 세계는 파괴를 면치 못하리라는 것이 맥나마라의 결론이다. 
현재 세계에는 7500기의 핵미사일이 존재하고, 이 가운데 2500기는 한 사람의 결정에 따라 15분 이내에 
즉각 발사될 수 있는 상태에 있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최악의 위험은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막다른 골목에 
몰린 가운데 극단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는 '통 큰 독재자'가 핵미사일을 소유하는 상황일 것이다.


(자료 : 조선일보 2009.04.10  서울대 교수·서양근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