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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경철의 히스토리아] [4] 마녀 사냥과 고문

바람아님 2013. 7. 9. 09:47


유럽에서 중세 말부터 근대 초까지 '마녀 사냥'의 광풍이 몰아치면서 고문 행위가 그치지 않았다. 종교재판소에서 행하는 고문은 손가락을 죄는 것부터 뜨겁게 달군 의자에 앉혀 놓는 것까지 다양했다. 혐의자들이 이런 시련을 끝까지 이겨내고 석방되기란 지극히 어려운 일이었다. 1673년 독일에서 한 여인은 뾰족한 고문의자에 11일 밤낮을 꿇어앉아서 발에 유황을 붓는 고문을 당하다가 정신병에 걸려 죽었다.


이런 식의 고문에 대한 비판이 일자, 고문은 단 한 차례만 시행하는 것으로 약간 개선이 이루어졌다. 그러자 한번 시작하면 입을 열 때까지 계속 고문을 가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마녀 사냥을 하는 재판관은 자기가 사회를 수호하는 성스러운 작업을 한다고 믿었지 야만적인 행위를 한다는 생각은 결코 하지 않았다.

사정은 오늘날에도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미국의 CIA가 9·11 테러 용의자들에게 고문을 가한 사실이 밝혀졌다. 한 용의자에게는 무려 183차례나 물고문을 가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에 대한 논란을 지켜보면 오늘날 미국이 어떤 지경에 이르렀는지를 알 수 있다.

부시 행정부 시절 CIA 국장이었던 마이클 헤이든은 이런 정보들이 밝혀지는 것이 국가 안보를 위험하게 한다고 오바마 정권을 강력하게 비난했다. 전직 CIA 국장들은 용의자를 천장에 매달아 놓고 잠을 재우지 않을 수 있는 시간은 최장 7일로 제한하며, 좁고 어두운 박스에 용의자를 감금했을 경우 하루에 6시간 이상은 밖으로 내보내야 한다는 식의 규정을 두었다며, 결코 야만적인 고문을 한 것은 아니라고 강변한다.

세계의 패권(hegemony)을 차지하는 것은 단지 군사력과 경제력이 강하다고만 되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수긍할 수 있는 보편적인 가치를 주장해야 한다. 예를 들어 노예무역과 해적 행위로 엄청난 이익을 보던 영국이 19세기에 스스로 그런 것들을 포기하고 더 나아가서 다른 국가들에 대해서도 금지시킨 것은 이 나라가 유럽의 일개 강대국에서 한 차원 높은 수준의 제국(帝國)으로 상승했다는 표시라 할 수 있다. 반대로 민주주의와 인권을 목청껏 소리치던 미국이 야만적인 고문 행위를 옹호하고 나선 것은 이제 이 나라가 세계의 패권국가가 아니라 일개 강대국 중 하나로 격이 떨어져가는 징후로 보인다.


(출처-조선일보 2009.04.24  주경철,서울대 교수·서양근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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