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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경철의 히스토리아] [3] 튤립 광기(tulipomania)

바람아님 2013. 7. 8. 18:13


해마다 4월 말이 되면 네덜란드의 할렘시 주변 지역은 지평선 끝까지 튤립으로 덮여 장관을 연출한다. 이 아름다운 

튤립이 한때 광란에 가까운 투기의 대상이었던 적이 있다.


17세기 네덜란드에서는 강렬하고 다양한 색상을 가진 튤립이 큰 인기를 끌면서 가격이 급등했다. 이를 이용해서 
돈을 벌 수 있다는 데 생각이 미치자 수많은 사람들이 전 재산을 털어 텃밭을 사고 튤립 구근(球根)을 키웠다.

이는 곧 역사상 유례를 찾기 어려운 투기 현상으로 이어졌다. 값이 오르리라고 예상되는 구근을 10%의 선금을 
지급하고 미리 확보해 놓는다. 수확기가 되면 잔액을 지급한 다음, 값이 훨씬 올라 있는 이 구근을 다른 사람에게 
되팔아서 이익을 남긴다.

전체적으로 꽃값이 오르는 기간에는 이런 방식으로 큰 수익을 올릴 수 있었다. 전설적인 구근 종자인 '셈페르 
아우구스투스'는 1633년까지 값이 500길더였던 것이 1637년에는 1만길더에 거래됐다. 꽃 한 송이가 대저택 
한 채 값을 상회할 정도였다.

그러나 모든 일에는 끝이 있는 법이다. 머지않아 꽃값이 떨어지기 시작했고, 뒤늦게 막차를 탔던 사람들이 
재산을 날리는 현상이 벌어졌다. 누구나 자신이 보유한 구근을 처분하려고 했지만 정작 사려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으므로 자연히 구근 가격은 급전직하로 떨어졌다. 5000길더를 호가하던 상품이 50길더까지 
내려가도 구매자는 나오지 않았다.

'튤립 광기'는 자본주의적 투기가 어느 정도까지 극단으로 치달을 수 있는지 보여주는 흥미로운 사례이다. 
그런데 흔히 이 점만 언급하고 말지만, 이런 엄청난 사건이 나중에 어떤 방식으로 수습되는지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가격이 폭락하자 구매 계약자가 잔액 지급을 거부하는 일이 도처에서 벌어졌다. 계약을 취소하려면 10%의 
위약금을 지급해야 했으나 대부분 한 푼도 갚지 않으려고 했다. 결국 할렘시가 3.5%의 위약금을 물면 계약을 
취소할 수 있다는 지침을 정함으로써 이것이 대체적인 기준이 되었다. 많은 중산층 시민이 몰락하도록 내버려 
둘 수도 없고 그렇다고 재배농에게 모든 피해를 전가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양측이 적당한 수준에서 피해를 
나누기로 합의를 본 것이다.

튤립 광기가 역사적인 투기 사건치고는 의외로 피해가 그리 크지 않았던 이유는 사회 전체가 효율적으로 
충격을 흡수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