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産業·生産·資原

[한국, 저성장 일본 반면교사 삼아라(2)] 불황에도 청년 일자리 넘치는 日.. 비결은 탄탄한 중견기업층

바람아님 2016. 6. 26. 00:20
파이낸셜뉴스 2016.06.23. 17:10

日 경제정책이 주는 교훈
20대 고용률 韓 58% 日 75%.. 취업 안하는 고급인력이 문제
日 엔화 믿고 과감한 양적완화.. 우리가 따라하기엔 위험한 정책
2020년 도쿄올림픽 효과 의문.. SOC보단 사회복지에 재정써야


일본은 '잃어버린 20년'을 극복하기 위해 지난 2012년 12월 아베 신조를 총리로 선택했다. 아베 총리는 '2~3%의 인플레이션 목표, 무제한 금융완화, 마이너스 금리정책'을 통해 길고 긴 불황을 타개하겠다고 공약했다. '아베노믹스'로 불리는 일본 정부의 경제정책은 현재 절반의 성공을 거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일본식 장기불황 초입에 진입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는 지금, 우리가 일본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점은 무엇일까. 이를 위해 파이낸셜뉴스는 지난 6월 14~17일 일본 도쿄에서 경제학자들과 시민들을 만났다.

■韓 취업대란? 日은 걱정 無

박근혜정부의 주요 정책 가운데 딱 한 가지만 꼽으라고 한다면 그것은 '일자리정책'이다. 2000년대 들어 한국은 일본에 비해 실업률이 높았던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그러나 20대 청년의 실업률만을 본다면 상황은 역전된다. 실제 2014년 통계를 보면 한국의 청년실업률은 9%까지 상승해 일본의 5.7%와 크게 차이가 난다. 전체 인구 중 취업자 비율을 나타내는 '고용률'이라는 지표를 보면 2015년 한국의 20대 청년 고용률은 57.9%다. 일본은 2014년 기준 74.7%를 기록했다. 한국 청년들은 100명 중 58명 정도가 돈을 버는 일자리를 가지고 있는데, 일본의 청년들은 100명 중 75명이 돈을 벌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 일본에서 만난 대학생 가운데 취업 때문에 고민하는 사람은 찾지 못했다. 16일 일본의 명문 대학교인 와세다대 교육학부에 재학 중인 나카하라씨(21)는 올해 졸업반으로 이미 일본의 제조.유통일괄형 의류(SPA) 브랜드인 유니클로에 입사하기로 결정됐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에선 취업으로 고민하는 이들은 찾아보기 힘들다"고 말했다.

이는 통계지표에서도 확인된다. 일본 통계국이 매월 발표하는 '유효구인배율'을 보면 일본은 청년실업에서 자유로운 상태다. 유효구인배율이란 구인 수를 구직자 수로 나눈 값이다. 이 지표가 1.0보다 작으면 일손이 부족하다는 의미로, 일본은 2008년 3월 1.0 이하로 떨어진 이후 5년7개월 동안 1을 넘지 못했다.

오히려 일손이 부족한 상황이다. 나카하라씨와 같은 대학, 같은 과에 재학 중인 마쓰카와씨(22)는 "와세다에는 여러 나라에서 많은 유학생이 온다. 그중 한국에서 온 학생도 적지 않다. 이들은 한국의 취업시장 상황이 너무 어렵다며 일본 기업에 취업하려고 준비하고 있다. 얼마 전 서울대에서 온 한국인 유학생 친구도 일본 전자기업에 취업했다"고 말했다.

그 대신 일본에서는 자발적으로 취업을 하지 않겠다는 고급인력이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 다나카 겐지 일본정책투자은행 산업조사부 경제조사실장은 "한국에선 일자리가 부족해 문제가 되고 있지만, 일본에선 고급인력들이 취업을 기피하는 경우가 적지 않아 그것이 사회적 문제로 부각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일본 명문 대학으로 꼽히는 와세다대 학생 중에서도 자발적으로 취업을 하지 않겠다는 이들이 있었다. 이 대학 학생인 엔도씨(22)는 "올해 졸업반이지만 아직까지 취업에는 관심이 없다. 쓰가루사미센(일본 전통악기)이 좋아서 당분간은 이 악기를 연주하는 낙으로 살 생각"이라고 말했다.

지난 20년간 연평균 경제성장률 1%도 넘지 못한 일본의 청년실업률이 매년 3% 정도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한 우리보다 낮은 이유는 무엇일까. 박상준 와세다대 경제학과 교수는 "일차적 원인은 인구구조에 있다. 일본의 55~64세 인구는 20대 인구의 130%나 된다"며 "다만 한국은 50~59세 취업률이 일본에 비해 낮아 일자리 문제는 지속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더불어 우리는 일본에 비해 양질의 일자리가 턱 없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한파 경제학자로 꼽히는 후카가와 유키코 와세다대 정치경제학술원 교수는 "일본은 한국보다 중견기업 층이 두꺼워 취업준비생들이 선택의 폭이 넓다"고 설명했다. 실제 일본 전체 취업자 중 500인 이상 기업 취업자는 24.3%에 달한다. 이에 비해 한국은 9%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려면 기업이 나서야 한다는 조언이 나온다.

■일본의 양적완화…우리는 왜 못할까?

일본 정부는 지금도 물가를 끌어올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앞서 1973년과 1974년 월평균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5%를 넘어서기도 했지만, 1987~1990년 버블이 꺼지자 물가상승률이 예외적으로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1995년 1월부터 아베노믹스 정책이 실시되기 직전인 2012년 12월까지 물가상승률은 -0.1%를 기록했다.

이런 현상은 집값에서 두드러졌다. 무코야마 히데히코 일본종합연구소 수석주임연구원은 "버블이 붕괴된 이후 일본에선 집을 사면서 집값이 오르리라고 기대하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며 "사실 이는 인구증가율이 떨어지면서 집을 살 사람이 없어진 탓도 큰데, 최근에는 일본의 멘션(우리의 아파트) 가격이 조금씩 상승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 이유는 아베노믹스의 첫 번째 화살 '대담한 금융완화 정책'에 있다. 이 정책의 요지는 인플레이션율이 2% 수준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때까지 본원통화(현금통화+중앙은행 당좌예금) 양을 끝없이 늘리겠다는 것이다. 이 같은 정책은 엔화가치를 떨어뜨리는 효과로 이어졌고, 도요타 등 일본의 대표적인 수출기업들 역시 사상 최대 이익을 거두기도 했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도 양적완화에 대한 주장이 일각에서 제기되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는 앞선 미국이나 일본과 같이 대규모 양적완화가 불필요한 데다 하려고 한다 해도 불가능하다는 것이 경제학자들의 판단이다. 다만 통화 공급이 충분한가를 점검하고 저금리를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박상준 교수는 "일본이 대규모 양적완화에 발을 들여놓은 가장 큰 이유는 디플레이션을 인플레이션으로 전환시키고, 실질금리를 마이너스로 만들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한국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 수준에서 등락을 거듭하고 있다"며 "양적완화는 중앙은행이 물가를 안정적으로 유지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버려야 해 한국에는 너무나 위험한 정책"이라고 지적했다.

결국 양적완화란 중앙은행에 대한 신뢰를 잃고 통화가치가 무너져 '물가가 정말 오르겠구나' 하는 심리가 나타날 때까지 본원통화를 늘리는 정책이라는 설명이다. 하지만 중앙은행에 대한 신뢰가 무너질 경우 자국통화가 무너질 수 있다. 예컨대 물가상승률이 1000%를 넘어선 경험이 있는 과거 독일이나 남미가 대표적인 사례다. 물론 우리는 단기채무 비중이 30% 내외에서 유지되고 있고, 한국은행이 유사시 동원할 수 있는 외환보유액이 3600억달러에 달해 이런 일이 벌어질 가능성은 낮다. 그러나 만에 하나라도 한국은행과 원화 가치에 대한 신뢰를 잃게 된다면 다시 한번 외환위기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엔화는 '안전자산'이라는 것이 경제학자들의 설명이다. 다른 나라와 달리 일본은 사회적 충격이 발생할 경우 엔화 가치가 상승한다는 것. 1995년 고베 대지진이 발생한 후에도, 2011년 동북 대지진이 발생했을 때도 엔화 가치는 오히려 상승했다. 2011년 2월 달러당 82.5엔이던 엔화 가치는 대지진이 발생한 3월부터 절상돼 10월에는 76.8엔까지 절상됐다.

■2020 도쿄올림픽 일본경제 재도약

일본의 부채비율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일본 재무성에 따르면 지난해 말 현재 부채가 국내총생산(GDP)의 229.2%에 달했다. 유럽 재정위기의 불을 댕긴 그리스의 부채비율도 180%를 밑돈다. 일본과 그리스의 재정적자는 각 나라 GDP의 6%, 7.2%다. 그런데도 여전히 정부지출을 늘리고 있다.

지난해 말 한국의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88.4%에 그친다. 이 때문에 한국 정부는 정부 지출을 늘릴 수 있는 여력이 높다는 평가가 많다. 실제 국제통화기금(IMF)이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 국제기구는 물론 한국은행 역시 경기부양을 위해서는 정부지출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문제는 어디에 쓰느냐다. 최근 일본에선 "오는 2020년 열리는 도쿄올림픽이 일본 경제 재도약의 분기점이 될 것"이라는 주장이 널리 확산되고 있다. 10여년 전 고이즈미 정권에서 경제재정담당 장관으로 구조개혁을 진두 지휘한 다케나카 헤이조 게이오대 교수는 신간 '경제학이 알려주는 대변화, 2020년의 일본과 세계'를 통해 이런 논리를 설파하고 있다.

결국 도쿄올림픽을 위해 필요한 인프라 건설, 즉 사회간접자본(SOC)에 정부지출을 늘려 경기를 부양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풀이된다. 게다가 일본은 과거 1964년 도쿄올림픽 이후 경기가 살아난 경험도 있다. 그리고 이런 논리는 최근 일본 주식시장에서 베이비부머들의 자금을 붙잡는 근거로도 사용된다.

15일 도쿄 신주쿠 알타(ALTA) 스튜디오 옆 스타벅스에서 만난 이즈카씨(73)는 "투자한 자금을 찾으러 노무라증권 지점을 찾았다. 증권사 영업직원은 2020년 도쿄올림픽 호재가 있기 때문에 손실은 만회할 수 있다며 투자금 회수를 만류했다"며 실제 도쿄올림픽의 경제효과가 큰지 여부를 반문하기도 했다.

그러나 다수의 일본 경제학자들은 이구동성으로 도쿄올림픽 효과에 대해 부정적 의견을 내놓았다. 그들은 "도쿄올림픽이 끝난 후에는 어떻게 할 것이냐"고 반문했다. 오카자키 데쓰지 도쿄대 경제학과 교수는 "근본적인 대책이 아니라고 본다. 지금은 고령화되고 있는 인구구조를 감안해 사회복지에 정부지출을 늘려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이는 이미 2004년 SOC 축적도 조사에서 SOC가 충분히 과잉상태인 것으로 분석됐는데도 여전히 공항·도로 건설에 열을 올리는 한국 정부 역시 감안해야 할 사안이다. 실제 2016년 SOC관련 특별회계 예산은 2015년 말 국회 심의 과정에서 3400억원이나 증액됐다. 2016년 4월 국회의원 선거가 원인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이에 대해 박상준 교수는 "한국이 내수진작을 위해 SOC에 재정을 쏟아붓고 있는 상황을 고려하면 일본의 실패를 답습하는 셈"이라며 "선심성 정책에 예산이 낭비되는 동안 기본적 사회보장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퇴직을 앞둔 장년층의 노후 걱정이 소비감축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fact0514@fnnews.com 김용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