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아트칼럼

[우정아의 아트 스토리] [11] 파리의 거리: 비 오는 날

바람아님 2013. 7. 16. 07:16

(출처-조선일보 2011.05.10  우정아 KAIST 교수·서양미술사)


빗물에 말갛게 씻긴 보도 위로 행인들의 발자국 소리가 잔잔하게 울리고, 그 사이에 섞여 있는 말발굽 소리가 경쾌하다. 
세련되게 차려입은 남녀 한 쌍이 우산을 나눠 쓴 채 눈앞으로 다가온다. 그들에게 눈길을 주는 순간, 오른쪽 구석으로부터 
검은 옷을 입은 신사가 무척 바쁜 걸음으로 우리를 스쳐 지나간다.

비 내리는 거리를 바삐 걷는 이의 눈에 비친 순간적인 장면을 그대로 담은 듯한 이 작품은 프랑스의 인상주의 화가 구스타브
카유보트 (Gustave Caillebotte·1848~1894)의 '파리의 거리: 비 오는 날'(1877)이다. 
가로 3m에 육박하는 이 그림 앞에 서면, 비 오는 날의 촉촉하고도 상쾌한 공기가 느껴진다.










'파리의 거리: 비 오는 날'(1877)

19세기 중반, 파리는 나폴레옹 3세가 주도하고 조르주 오스망 남작이 감독했던 대대적 재개발을 통해 획기적으로 변모했다. 

오스망 남작은 중세부터 이어져 온 비좁은 골목길과 낡은 건물을 모두 철거하고, 널찍한 대로를 따라 고층 건물이 즐비하고 

밤에는 가로등 이 휘황한 새로운 도시를 건설했다.


재정비 사업 과정에서 보여준 오스망의 '미친 존재감'은 '오스망화(Haussmannization)'라는 신조어를 낳았다. 

과거의 파리가 평범한 사람들의 생활의 터전이었다면, '오스망화'한 파리는 그 자체로 볼거리이자 여유 있는 이들을 위한 

레저 공간이 되었다.카유보트 작품의 주인공은 어느 누구도 아닌 바로 아름다운 신도시, 파리다.


지난 수년간 서울 도심도 '오스망화'했다. 보슬비가 내리는 날이면, 디자인 블록으로 말끔하게 포장된 광화문 광장을 걸어도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