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09.06.19 주경철 서울대 교수·서양근대사)
"바닷물 닿는 곳에 화교(華僑)가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화교들은 세계 각지에 퍼져 있다. 타이완에서 발표된 공식 통계(中華民國 僑務統計)에 따르면 세계의 화교는 3600만 명이 넘는다.
화교들이 아시아 각지로 이주해 간 것은 대체로 남송(南宋) 시대인 12세기부터로 잡는다. 장사를 하기 위해 해외로 나간 경우도 있고, 흉년이 들어 먹고살기 어려워지자 생존을 위해 나간 경우도 있다. 화교의 해외 진출에서 큰 전환점을 이룬 계기 중 하나는 명대(明代) 초에 시행된 해금(海禁) 정책이다. 명 조정은 허락 없이 바다로 나간 자들을 사형에 처할 정도로 민간인의 해외 진출을 강력하게 억압하려 했다. 그러나 정부 정책이 그렇다고 해도 몰래 해외로 빠져나간 사람들은 계속해서 일본, 필리핀, 자바 등지에 거류지를 형성했다. 그렇지만 모국과의 관계가 끊어지고 나니 화교들은 늘 불안정하고 위험한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예컨대 마닐라에서는 16~17세기에 약 2만~3만 명의 화교들이 집단학살을 당하는 사건들이 연이어 일어났다. 이런 상태에서 그들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친족들 간의 상호 협력 시스템을 구축하고 이를 이용해서 사업을 확장해 나갔다.
화교들은 그들이 정착한 사회에서 소수인종이라 하더라도 막강한 경제력을 행사하곤 한다. 예컨대 인도네시아에서는 화교가 인구의 4%에 불과하지만 전체 경제 부문의 80%를 장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전 세계에서 화교들이 운용하는 자본은 적게 잡아도 2조달러가 넘는다. 화교는 유태인에 맞설 수 있는 유일한 인종집단(ethnic group)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화교들은 중국인으로서의 혈연적·문화적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현지 사회에 동화되어 갔다. 역사적으로 모국의 보호를 받지 못했던 까닭에 더더욱 그들을 받아들인 사회 속에서 확고하게 자리를 잡아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바로 이런 사정 때문에 화교 네트워크는 세계화 시대에 가장 유리한 조직으로 자라나게 되었다. 지난날과는 달리 이제 중국 정부와 손잡으면서 더욱 막강한 경제적 힘을 행사하게 된 화교경제권을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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