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09.06.26 주경철 서울대 교수·서양근대사)
민주 정치의 핵심은 뭐니 뭐니 해도 역시 의회 정치에 있다. 국정의 주요 문제들에 대해 심도 있게 논의하여 적절한 해결책들을 마련하는 것이 의회의 역할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의회 정치가 실종된 지 오래다. 국민의 대표들이 기껏 보여준다는 게 한쪽 의원들은 의사당 출입문을 사수하려 하고 다른 쪽 의원들은 그 문을 부수고 들어가기 위해 백병전을 벌이는 광경이다. 아예 의사당을 박차고 나와 길거리에서 무리를 이루며 돌아다니는 것으로 의무를 대신하는 의원들도 부지기수다. 의원들이 국가와 사회에 만연한 갈등을 풀어주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더 악화시키고 있다는 느낌을 지우기 힘들다. 이런 극한 갈등을 해결할 방도가 없단 말인가.
고전(古典)에서 답을 찾아보면 어떨까? 조너선 스위프트(Jonathan Swift·1667 ~1745)의 '걸리버 여행기'(1726년 작, 1735년 개작)는 아동용 동화가 아니라 18세기 영국 정치에 대한 예리한 비판을 담고 있는 책이다. 토리와 휘그 두 당파로 갈려 정쟁만 일삼는 당시의 의회 상황에 대해 저자가 내놓은 방안은 이런 식이다.
"우선 각 정당에서 백명의 지도자들을 뽑는다. 그리고 머리 크기가 비슷한 사람들끼리 짝을 지어 놓는다. 그런 다음, 훌륭한 외과의사 두 사람에게 그들의 머리를 톱으로 자르도록 시킨다. 뇌가 거의 절반으로 나누어지도록 말이다. 이렇게 해서 잘라낸 머리 반쪽을 반대편 정당의 사람에게 붙인다. 이 작업은 정확성을 요구하는 작업이지만, 재치 있게 수술을 한다면 정당 간의 싸움은 틀림없이 치료될 것이다. 절반으로 나누어진 두 개의 뇌가 하나의 두개골 속에서 논쟁을 하게 되면, 얼마 지나지 않아 서로를 잘 이해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하면 세상을 다스리고 감독하기 위하여 태어났다고 생각하는 정치가들의 머리에서도, 국민들이 무척이나 바라는 조화로운 사고와 중용이 생겨나게 될 것이다."
아직은 의학이 그런 정도로 발전해 있지는 않아서 이 조치를 문자 그대로 시행하기는 힘들 테지만, 어쨌든 오늘날 대한민국의 국회는 모종의 수술이 필요해 보인다. 그렇지 않으면 국민들이 차라리 호흡기 떼고 존엄사를 시켜 달라고 요구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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