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文,社會科學/敎養·提言.思考

[임의진의 시골편지]천렵놀이

바람아님 2016. 8. 3. 23:46
경향신문 2016.08.03. 20:50

모래강변 치렁치렁한 머리를 땋은 버드나무가 헤드뱅잉. 물고기는 귀가 없으니 강바람 록음악을 듣지 못한다. 바보같이 바늘을 숨긴 지렁이를 탐하다가 강태공에게 붙잡히면 자글자글 매운탕 되어 때늦은 불꽃 춤. 판화가 오윤의 저 유명한 작품 ‘천렵’엔 족대를 들고 냇물을 뒤지는 아재들, 주먹만 한 돌을 모아 솥단지를 얹고 불을 지피는 이의 뒤통수가 재미지고 오지게 표현되었다.

 마을마다 흔했던 여름나기 풍경. 시방 그 많던 이웃들은 다 어디에 갔는가. 토종 물고기는 씨가 말랐단다. 어딜 가나 파헤쳐진 강물엔 쿰쿰한 녹조가 떠다니고, 넓어진 신작로마다 너도나도 차를 장만하여 거대한 주차장이다. 냇물은 물 반 고기 반이 아니라 닭뼈와 쓰레기들로 몸살을 앓고 있다. 작은 동네에 머물며 천렵을 즐기고, 재물이나 권세가 아니라 사람을 우선하고 인정과 자연을 소중히 여기면서 살 수는 없는 걸까.

한번은 페루와 볼리비아를 끼고 있는 티티카카 호수를 찾아갔다. 버스에서 내려 배로 갈아타자마자 거대한 산정 호수. 거기 코파카바나라는 강변마을이 있었다. 잉카 어부들이 물고기를 놓고 흥정을 하던 곳. 꼭 우리 맛 닮은 매운탕을 끓여 먹거나 ‘세비체’라는 레몬에 절인 생선회를 내놓기도 했다. ‘꾸이’라는 쥐목과 동물을 잡아다가 불에 굽거나 튀긴 요리도 즐기는데 쥐 이빨이 떡하니 놓여 있어 비명을 지를 뻔도 하였다.


건너편엔 먼 옛날 우리처럼 색동저고리를 입는 원주민들이 살고 있었다. 동쪽은 독수리 콘도르가 지키고 서쪽은 산신령 퓨마, 남쪽은 늑대개 자칼, 북쪽은 용왕님 물뱀이 지킨다는 호수. 여기 원주민들은 한번씩 천렵을 즐기기도 하는데 정분이 깊이 들어 마을은 벌꿀보다 끈끈하였다. 여행자를 위해 마련한 상은 푸짐하였고, 이웃들을 모두 불러 기쁨도 슬픔도 함께 나눴다. 새까만 아이들이 줄줄이 사탕으로 골목에서 뛰놀았다. 


유치원 버스 같은 거 태우지 않아도 아이들은 옥수수처럼 잘 자란다. 대한민국 ‘TK 가카’의 지엄하신 땅이 아니라 지구 반대쪽 동네 ‘티티카카’ 얘기다. 옹졸하지 않은 대범한 사랑으로 살아가는 영혼들. 세상은 그런 맑고 순수한 영혼들이 어느 정도 살고 있어주어야 영속할 수 있는 곳이라고 나는 믿는다.


<임의진 목사·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