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금융권도 분할상환 적용…내년 상환능력심사 내실화
한국 경제의 '뇌관'으로 불리는 가계부채에 대한 우려가 점점 커지고 있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11일 금융통회위원회에서 기준금리를 연 1.25%에서 동결한 직후 기자간담회를 하고 "가계부채 증가세가 기대와 달리 꺾이지 않고 있다"며 "한은뿐 아니라 감독 당국도 가볍게 볼 문제는 아니다"고 말했다.
가계부채가 그동안 생각한 것보다 훨씬 심각한 문제로 다가왔다는 점을 강조한 발언으로 풀이된다.
가계부채는 소비를 위축시켜 장기적으로 경제 성장의 발목을 잡을 우려가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올해 은행권의 여신심사 가이드라인을 시행하고 있지만 뚜렷한 효과는 체감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에 따라 가계부채 증가세가 계속될 경우 정부가 확실한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는 여론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 2년간 200조 급증한 가계 빚…저금리·부동산 규제완화 영향
가계부채에 대한 이 총재의 우려는 어느 때보다 강도가 강하다.
이 총재는 지난 7월14일 금통위 기자간담회에서 "정부와 금융감독당국이 가계대출 급증세를 억제하기 위한 노력을 적극적으로 강구하고 있기 때문에 급증세는 다소 진정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이런 긍정적 표현을 찾아보기 어렵다.
이 총재는 "가계부채 증가세가 오랫동안 지속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가계부채는 가볍게 볼 문제가 아니다" 등 걱정이 가득 담긴 발언을 쏟아냈다.
나아가 은행의 여신심사 가이드라인 등 정부의 각종 대책이 아직 가시적 성과를 내지 못하고 평가했다.
통화정책당국의 수장으로서 가계 빚 증가를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국 경제에서 가계부채는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지만 최근 2년간 폭발적인 증가세를 보였다는 점에서 심각하다.
한은의 가계신용 통계를 보면 지난 3월 말 현재 가계부채는 1천223조6천706억원으로 2014년 3월 말(1천22조4천462억원)보다 201조2천244억원 급증했다.
여기에는 여러가지 요인이 있지만, 한은의 저금리 기조와 정부의 부동산 규제완화 정책의 영향이 크다는 중론이다.
한은은 이 총재가 취임한 뒤 2014년 8월부터 올해 6월까지 5차례에 걸쳐 기준금리를 1.25% 포인트 내렸다.
또 정부는 2014년 8월 내수 진작을 위해 주택담보인정비율(LTV), 총부채상환비율(DTI) 등의 규제를 완화했다.
이런 영향에 작년에는 부동산 경기가 활황을 보였고 가계부채 증가액이 사상 최대인 117조8천400억원을 기록했다.
올해도 가계부채 증가세는 거침이 없었다.
1∼7월 은행권의 가계대출만 34조6천원 늘어나는 등 가계부채는 계속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또 이자 부담이 상대적으로 큰 제2금융권 대출이 급증했다.
올해 들어 지난 5월20일까지 비은행권의 가계대출 증가액은 15조9천억원으로 작년 상반기(8조8천억원)의 두배 수준으로 집계됐다.
◇ 당국, '약발' 안 듣는 대책에 고심
가계부채가 주택담보대출을 중심으로 급증세를 보이자 정부는 올해 2월 수도권에서 시작해 5월부터는 전국 시중은행의 주택대출 심사를 강화했다.
소득심사를 더 깐깐하게 하고 대출금은 초기부터 원금과 이자를 나눠 갚도록 하는 여신심사 가이드라인을 적용했다.
그러나 주택담보대출 증가세는 수그러들지 않았다.
여신심사 가이드라인 적용 대상에서 제외된 아파트 중도금 대출(집단대출)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아파트 분양시장이 호조를 보이면서 올해 상반기 주택담보대출 증가액 중 집단대출(11조6천억원)이 차지하는 비중은 48.7%에 달했다. 작년 말 비중은 12.4%였다.
은행 대출이 어려워지자 금리가 높은 2금융권으로 가계부채가 이동하는 '풍선효과'마저 나타났다.
이에 정부는 2차 '진화'에 나섰다.
지난달부터 은행권에 이어 보험권에서도 대출심사를 강화했다.
집단대출을 잡기 위해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중도금 대출 보증 건수를 1인당 2건 이내로 제한하고 보증 한도 역시 수도권과 광역시는 6억원, 지방은 3억원으로 제한했다. 분양가 9억원 이상은 아예 보증 대상에서 제외했다.
금융감독원은 집단대출이 크게 늘어난 KB국민은행과 KEB하나은행 등에 현장검사를 나가 대출 심사를 제대로 진행하고 있는지 실태조사를 벌였다.
그런데도 7월 은행권 가계대출은 6조3천억원 증가하는 등 기세가 꺾이지 않는 모습이다.
보통 여름철은 주택 거래 비수기로 분류되는데도 이례적으로 주택담보대출이 5조8천억원 늘었다.
물론 정부의 가계부채 억제 대책이 시행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효과가 뚜렷하지 않은 측면이 있다.
이주열 총재는 "(가계부채 대책의) 가시적 성과가 나타나고 있지 않은 것이 사실"이라면서도 "일부 조치는 시행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효과를 면밀히 지켜보는 중"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다음 달 상호금융, 저축은행 등 제2금융권의 분할상환을 확대하는 대책을 발표한다는 계획이다.
전세자금을 빌린 차입자가 원하는 만큼 대출금을 분할상환할 수 있는 대출상품도 준비하고 있다.
내년부터는 신용대출 등 기타대출의 원금 상환액까지 고려한 총체적 상환능력(DSR)을 산출해 주택담보대출 심사에 단계적으로 활용키로 했다.
이렇듯 가계부채 증가 속도를 늦추기 위한 대책이 다각도로 시행되고 있는데도 8∼9월에도 증가세가 꺾이지 않는다면 여신심사 가이드라인 등 가계부채 대책 자체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커질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추가 대책을 요구하는 정치권의 목소리도 더 커질 수 있다.
이날 정은보 금융위 부위원장은 국회에서 열린 민생특위 가계부채 현안보고에 불려 나가 "집단대출과 제2금융권 대출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선제적으로 관리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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