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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요즘 늙은 분들

바람아님 2016. 9. 22. 23:49
중앙일보 2016.09.22. 19:02

호호백발 할머니가 돼도 입에 담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말이건만 나도 모르게 내뱉고야 말았다. “요즘 젊은것들은…”이란 말. 20대 직원에게 카카오톡으로 퇴사 통보를 받았다는 중소기업 대표의 하소연을 들으면서다. 40대인 그도 “요즘 애들은 근성이 부족하다”고 맞장구쳤다. 그러곤 침묵. 이런 말을 하는 상황 자체가 우린 ‘요즘 젊은것’이 아니라 (동방예의지국이니 ‘것’ 대신 ‘분’으로) ‘요즘 늙은 분’에 가까워지는 거라는 자각 때문이다.

 20대들에겐 ‘예비 꼰대’이고 50대 이상에겐 ‘머리에 피가 덜 마른’ 세대여서일까. 화제몰이 중인 SBS 다큐멘터리 ‘요즘 젊은것들의 사표’를 보는 마음도 복잡했다. 간신히 취직했지만 1년 내 퇴직하는 신입사원 비율이 28%에 달하는 이유를 파고들었다. ‘요즘 젊은것들’도 할 말은 많았다. 의미 없는 야근에 지쳐서,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을 찾기 위해 대기업을 그만두고 스쿠버다이빙 강사가 된 이들의 얘기가 생생했다.


 그럼에도 불편했던 이유. 회식 자리에서 조직의 막내가 수저를 놓는 등의 문화가 이 다큐에선 조직문화의 폐해로 그려졌기 때문이다. 한국 기업문화에 개선 여지가 많은 건 사실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사직서는 카톡으로 보내는 게 아니고, 회식 자리에선 막내가 수저를 놓는 게 맞다(어디선가 “이런 꼰대”라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지만).


 ‘요즘 젊은것들’이란 한탄은 21세기의 전유물이 아니다. 동서와 고금을 막론하고 수천 년간 계속됐다. 중국 사상가 한비자(기원전 280∼233)는 저서에서 “요즘 젊은것들은 부모가 화를 내도 고치지 않고 (중략) 스승이 가르쳐도 변할 줄 모른다”고 지탄했다. 역시 기원전 470년생으로 “너 자신을 알라”던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도 “요즘 애들은 폭군”이라며 미래가 암울하다고 개탄했다는 설이 있다. 하지만 2500년이 지나도록 지구는 멸망하지 않았다. 결국 각 세대가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기에 서로를 멀리하고 미워하는 건 아닌지. 세상을 살아온 덕과 경험치로 젊은 세대를 아량 있게 이해해주면 어떨까 싶다.


 아무리 그래도 ‘요즘 젊은것들’을 이해하기 어렵다면? 노먼 매클레인의 소설 『흐르는 강물처럼』의 다음 구절에서 위안을 찾자. “우리가 더불어 살아가는 이들이야말로 우리를 곤란하게 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을 사랑할 수 있다. 완전한 이해 없이도 완전한 사랑은 가능하니까.” 그리고 기억하자. 우리 모두, 한때는 ‘요즘 젊은것들’이었다.


전수진 정치부 기자



[세계일보기사]-"흐르는 강물처럼(영화)


아버지이자 목사인 매클레인은 낚시를 종교처럼 여긴다. 엄격한 아버지의 영향으로 두 아들도 아버지를 따라 낚시를 배우게 된다. 낚시를 비롯해 아버지로부터 같은 교육을 받은 두 형제는 무척 다르다. 


큰 아들 노먼은 책임감이 강하고 질서에 순응해 아버지의 가르침을 철저히 따른다. 그의 직업 역시 대학교수다. 반면 작은아들 폴은 자유분방하면서도 현실에 반항하는 도전적인 기질을 지녔다. 일탈을 즐기는 성향을 타고난 그는 지역신문의 기자가 되지만 도박에 빠져 위태로운 삶을 이어간다.  


이들에게 유일한 공통점이라고는 낚시를 좋아한다는 것뿐이다. 두 아들은 아버지와 함께 같은 강에 낚싯줄을 던지지만, 다른 성향을 지닌 탓에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  



강물이 흐르듯 잔잔한 삶의 파고에 던져진 돌은 폴의 죽음이다. 폴이 젊은 나이로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면서 남은 부자는 폴의 부재에 따른 공허함을 가슴 깊이 느끼게 된다. 서로를 사랑했지만 아껴주지 못했던 이들은 ‘이해와 사랑’이라는 삶의 깨달음에 다가선다.  

목사인 매클레인은 아버지로서의 마지막 설교를 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기도 한 설교에서 매클레인은 “인생은 흐르는 강물과 같고, 우리는 서로를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사랑만큼은 완벽하게 할 수 있다”고 전한다. 아버지는 흐르는 강물을 향해 또다시 낚싯줄을 던진다.  

몬태나의 아름다운 자연을 배경으로 하는 세 부자의 가족사가 잔잔하게 그려진다. 영화는 현대사회에서 냉소적으로 변해버린 가족들을 향해 일침을 던진다.

권구성 기자 ks@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