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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문화 기행] (5) 이탈리아 피렌체‥골리앗 맞섰던 다비드, 피렌체의 수호신으로

바람아님 2013. 8. 1. 16:32
  신플라톤주의와 미켈란젤로의 '다비드 상'


르네상스 예술의 최대 후원자였던 메디치가의 '위대한 로렌초'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이날도 카레지의 별장에서 피렌체의

명사들을 위한 만찬을 열었다. 주 메뉴는 피렌체의 대표요리인 비스테카 알라 피오렌티나. 뼈 사이에 달린 쇠고기의 모양이

알파벳 '티'자와 같다고 해서 훗날 티본스테이크라 명명된 송아지 안심구이다.

여기에 이탈리아 최고의 품질을 자랑하는 토스카나산 키안티 와인이 서비스됐고 후식으로는 베네치아를 통해 들여온 인도산

홍차와 크로스타타(잼을 발라 구운 쿠키)가 준비됐다. 만찬 테이블 한쪽에서는 대음악가 스쿠아르찰루피가 추천한 악사들이

류트와 비올라를 연주하며 만찬 분위기를 돋우고 있다.

학자와 예술가들을 초청해 대화를 나누는 것은 대시인이기도 했던 로렌초의 가장 큰 즐거움 중 하나였다. 만찬의 주빈은 플라톤

아카데미 원장인 마르실리오 피치노와 젊은 철학자 피코 델라 미란돌라였다. 로렌초의 둘도 없는 친구이자 시인인 폴리치아노

와 고전학자인 란디노의 얼굴도 눈에 띄었고 로렌초가 존경해 마지않는 건축가 알베르티도 멋진 청색 비로드를 입고 참석했다.

화가 보티첼리와 조각가 첼리니도 한쪽에 자리를 잡았다.

이 명사들의 향연에 항상 빠지지 않고 함께하는 소년이 있었다. 코가 내려앉은 다소 침울한 표정의 이 소년은 훗날 바티칸의

시스틴 성당 천장에 불후의 명작 '천지창조'를 남기게 되는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였다. 일찍이 소년의 비범한 재능을 간파한

로렌초는 아이를 자신의 저택으로 데려와 메디치의 일원으로 대접하며 최상의 귀족적 소양을 배양해줬다.

만찬에 참석한 인물들의 공통점은 로렌초의 경제적 후원을 받고 있으며 신플라톤주의 철학에 공감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신플라톤주의자들은 플라톤을 비롯한 그리스 철학자들의 사상을 기독교 교의와 결합시키려고 했다. 이들은 아름다움을 본

질을 넘어선 최고의 가치로 보았고 그러한 아름다움은 신의 섭리에서 비롯됐다고 보았다.

이에 따라 그리스의 이교적 신화는 기독교적 맥락에서 재해석됐고 이 과정에서 고대 그리스의 건강한 신체미가 미의 이상으로

제시됐다. 성과 속의 경계를 허무는 이 같은 사상은 특히 시인과 예술가들에게 표현상의 자유를 가져다주는 계기가 됐다.

피렌체의 화가들이 저마다 인간 신체의 탐구에 몰두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것은 예술가들의 내면에 잠재해

있던 욕망의 폭발이었다.

한창 예민한 감수성을 지닌 미켈란젤로가 신플라톤주의에 공감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조각이란 창조주가 이미 만들어

놓은 작품을 돌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이라고 했던 그의 말은 미적인 표현을 신의 섭리로 보는 신플라톤주의의 입장을 반영하는

것이다.

그의 재능은 특히 남성 신체 묘사에서 빛을 발했다. 직물업자가 주축이 된 두오모 성당의 지도자들이 피렌체 자유의 상징물로

그에게 제작을 의뢰한 '다비드'상은 그 대표적인 예다. 구약에 등장하는 골리앗으로부터 나라를 구한 영웅 다비드를 묘사한

이 작품은 다비드 신체의 불거진 핏줄과 근육의 묘사로 보아 골리앗을 공격하기 직전의 긴장 상태를 포착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그리스 조각의 특징인 콘트라포스토 자세를 도입,고전적 전통을 계승하고 있지만 한편으로 균형 잡힌 신체와 매력적인

얼굴에는 세속적 관능미가 풍긴다.

미켈란젤로가 제작한 다비드 상은 1504년 피렌체의 중심인 시뇨리아 광장의 베키오 궁전 출입구 앞에 세워졌다. 성서 속의

유대민족을 지키던 다비드는 이제 피렌체 공화국 의회가 자리한 이 오래된 궁전 앞에 서서 현세의 자유를 수호하는 첨병이

됐다.

그런데 지금 피렌체에 가면 세 점의 다비드 상이 우리를 맞이한다. 어찌된 일일까? 이유는 이렇다. 베키오 궁전 앞의 오리지널

작품이 오랜 세월이 지나며 부식되자 1873년 시의회는 더 이상의 훼손을 막기 위해 아카데미아 미술관으로 이송을 결정했다.

대신 원래의 자리엔 대리석 복제품이 새로 수문장이 돼 베키오 궁전을 지키게 되었다.

이보다 8년 앞서 피렌체인들은 외침으로부터 자신들의 도시를 좀 더 견고하게 지키기 위해 아르노강 남쪽에 미켈란젤로의

언덕을 조성하고 여기에 다비드 상의 청동제 복제품을 세웠다.

흥미로운 사실은 피렌체를 찾는 관광객들은 묘하게도 다비드의 손바닥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점이다. 다비드 원본이 소장돼

있는 아카데미아미술관은 피렌체 관광 벨트의 최북단에 자리 잡고 있고,청동제 다비드가 있는 미켈란젤로 언덕은 최남단에

있다. 그 중간 지점인 시뇨리아 광장에 대리석 복제품이 있는데 중요한 볼거리는 바로 이 광장 주변에 몰려 있다.

피렌체의 영적 지주인 두오모 대성당은 광장의 북쪽에,영화 '전망 좋은 방'의 무대가 된 산타 크로체 성당은 그 동쪽에 자리 잡고 있다. 남쪽으로는 르네상스 미술의 보고인 우피치 미술관,서쪽엔 오르산미켈레 성당이 우리를 기다린다. 그러나 어디를 보든 우리는 시뇨리아 광장을 중심축 삼아 상하좌우로 오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싫든 좋든 다비드의 눈길을 피할 수 없다. 허튼짓을 하면 그가 쏜 새총에 맞을지도 모를 일이다. 다비드 상은 어쩌면 현세의 삶이 영원히 지속되길 바라는 피렌체인의 염원을 상징하는지도 모른다.

이 신화 속의 영웅은 오늘도 '꽃의 도시' 피렌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언덕에서 세속적 욕망으로 꿈틀거리는 도시를 사수하기 위해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다. 노을이 붉게 타들어가는 저녁 무렵 로렌초가 다비드의 귀에 대고 속삭인다.

'청춘은 너무나 아름답다네/ 그렇지만 순식간에 흘러가 버리지/ 즐기고 싶은 자는 당장 시작하라/ 확실한 내일 같은 것은 없으니.'(로렌초 데 메디치,'바쿠스의 노래' 제1절)

정석범 미술사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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