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손철주 미술평론가)
- '미인도' - 작자 미상, 종이에 담채, 114.2×56.5㎝, 1825년 무렵, 도쿄국립박물관 소장.
미인의 옛적 패션을 구경해보자. 우선 헤어스타일이 피어나는 뭉게구름 같다. 몽실하게 부푼 얹은머리는 윤기 자르르한 칠흑빛이다. 한쪽 끝에 매단 댕기에 멋 부린 티가 난다. 표정은 매우 고혹적이다. 웃음기 머금고 살짝 올라간 입 꼬리가 애교스럽다. 말 그대로 앵두 입술에 초승달 눈썹이다. 치마를 끌어올리고 은근히 몸을 꼬아 교태(嬌態)를 드러내는데, 고개는 갸웃하고 눈길은 나긋해서 사뭇 색정(色情)적인 느낌을 자아낸다. 조선시대 그림을 다 뒤져봐도 이런 '팜므 파탈'은 찾기 어렵다.
삼회장 노랑 저고리는 볼수록 아찔하다. 깃과 고름, 겨드랑이와 소맷부리에 댄 자줏빛 천이야 당연히 세련됐다. 하지만 품이 얼마나 작고 꽉 조이는지, 어깨에서 팔에 이르는 몸매가 훤히 비친다. 길이는 고작 한 뼘이 될까 말까다. 옷고름이 팽팽해질 정도로 솟아오른 젖가슴이 도련 아래로 보인다. 여인의 신분은 물으나 마나 기생이다.
그녀는 어인 일로 꽃을 손에 들었을까. 그림에 조선 중기 시인 어무적(魚無迹)의 시가 씌어 있다. 시 제목도 마침 '미인도(美人圖)'다. '하릴없이 봄이 늦게 올까 걱정이라/ 꽃가지 꺾어 들고 혼자서만 본다네.' 봄 소식이 늑장을 부리자 여인은 냉큼 꽃부터 꺾어 봄을 누리겠다는 속셈이다.
그녀가 입은 쪽빛 치마는 길고도 낙낙하다. 항아리 같은 저 치마를 펼치면 굽이굽이 열 폭이겠다. 여인은 치마 한 자락을 겨드랑이에 끼웠다. 그 바람에 꽁꽁 동여맨 치마허리는 가려졌지만 희디흰 안감이 살며시 드러났다. 봄마저 유혹하려 드는 기생이니 남정네 눈길이야 능준히 호릴 테다. 그림은 그 유명한 혜원(蕙園) 신윤복(申潤福)의 미인도에 버금가는 솜씨다.
화가는 다 그리고 나서 제 이름은 숨겼다. 그린 때와 곳만 적어놓았다. '을유년 3월 16일, 얹혀살던 곳에서 그리다.' 그는 어디서 더부살이했을까. 기생을 그렸으니 기방(妓房)일지 모른다. 그래서일까, 그림 속에 지분(脂粉) 냄새가 여태 난다.
(참고- 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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