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둥이 아들에 딸 하나, 세 아이를 둔 워킹맘 황유선(42ㆍ중부대 신문방송학과 교수)씨는 2년 전까지만 해도 아이 교육을 놓고 늘 전전긍긍하던 여느 강남 엄마였다. 특별한 교육을 받게 하고자 아들은 사립초등학교에, 딸은 유아 영어 학원에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성적보다는 아이의 행복이 가장 중요하다고 여긴다. 마음을 비우게 된 데에는 네덜란드에서의 2년간의 생활이 크게 영향을 미쳤다. 공부를 강요하지 않는 네덜란드의 교육제도를 통해 많은 것을 느꼈다고. 최근 ‘네덜란드 행복육아’라는 책을 펴낸 황씨를 만나 달라진 계기를 들어봤다.
◇ ‘공부하라’는 잔소리가 없는 나라, 네덜란드.
남편을 따라 2년 전, 네덜란드에 간 황씨는 아이들이 등교하는 첫날부터 놀라운 경험을 했다. 전교생이 교실에 들어가지 않고 운동장에서 자유롭게 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아이들은 같은 반 또래 친구뿐 아니라 다른 학년의 언니, 동생, 누나, 형을 가리지 않고 운동장에서 어울렸다.
“서둘러 교실에 도착하자마자 자기 자리에 앉아 책부터 꺼내는 우리의 모습과 너무 많이 달라서 놀랐어요. 네덜란드에서는 1교시 수업 전까지 거의 모든 아이가 운동장에 나가서 놉니다. 이 시간을 ‘아침 놀이 시간’이라 불러요. 선생님도 등교한 아이들에게 교실에 있지 말고 나가서 놀라고 얘기합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네덜란드 학교에서는 숙제를 내주지 않는다. 학기 중은 물론이고 방학 때도 마찬가지다. 공부는 학교에서만 한다는 인식이 자연스럽게 형성돼 있다. 가정에서도 아이들에게 공부하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네덜란드에 가서 처음 맞는 방학식날이었어요. 아이들에게 방학 숙제가 뭐냐고 물었더니, ‘재밌게 놀기’(have fun)’이라고 하더라고요. 실제로 네덜란드에서는 적어도 초등학교 때까지는 숙제가 전혀 없어요. 사교육도 전혀 없죠. 방과 후에는 ‘플레이 데이트’(play date)라는 이름으로 집앞 골목에서 친구와 함께 신나게 뛰어 놉니다.”
중고등학교도 마찬가지다. 대학 입시를 치르는 학생을 제외하고는 성적에 대한 부담을 주지 않는다. 통계를 보면 네덜란드에서 대학에 가는 학생은 20% 미만이다. 성적 하위 60%는 4년 과정 단기 중고등학교를 마친 뒤 직업교육기관에서 기술을 배운다. 나머지 20%는 5년제 중고등학교를 졸업한 다음 실무 중심 직업전문대학으로 진학한다. 20%도 안 되는 학생을 제외하고는 대학 입시에 대한 부담이 전혀 없다. 또한 네덜란드 부모는 아이를 상위 20%에 들게 하기 위해서 공부를 강요하지 않는다.
“입시 경쟁이 치열한 나라에서 산 이방인의 눈으로 봤을 때, 처음에는 네덜란드 학부모의 태도가 이상하게 느껴졌어요. 왜 아이의 성적을 상위 20%로 끌어올리지 않는 것일까? 왜 학문 중심 대학교 준비과정인 중고등학교에 진학시키려 애쓰지 않는 것일까? 궁금했지요. 또한 가정에서 공부의 압박이 전혀 없다는 사실을 쉽사리 믿을 수 없었어요. 도저히 이해가 안 돼서, 자녀에게 무관심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지요. 하지만 오히려 저 같은 생각이야말로 네덜란드 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사고방식임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 않았지요.”
궁금증을 느낀 황씨는 주변 학부모들을 만날 때마다 질문을 많이 했다. 정말로 당신의 자녀가 실업계 중고등학교에 진학해도 괜찮으냐고. 이왕이면 인문계 중고등학교에 보내 대학에 갈 수 있도록 추가적인 교육을 할 생각은 안 해봤느냐고 말이다. 돌아오는 대답은 거의 비슷했다. 그는 “ ‘어느 학교에 가든지 아이가 행복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것’이었다”며 “OECD 대상국 중 네덜란드가 어린이ㆍ 청소년 행복지수에서 늘 상위권인 이유를 알 수 있었다”고 말했다.
“네덜란드 부모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현재 아이가 행복한지예요. 성적보다는 친구들과 잘 어울리며 즐겁게 학교에 다니고 있는지가 훨씬 더 중요해요. 아이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 가장 큰 부모의 역할이라 여깁니다. 아이에게 행복한 삶을 안겨 주기 위해서 현재의 삶이 비록 괴롭고 힘들더라고 견디고 이기며 공부하라고 조언하는 부모들은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공부보다는 아이가 정말 좋아하는 일을 찾아서 할 수 있도록 지지해주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반성을 많이 했습니다.”
◇내 아이의 행복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자녀 교육관이 바뀐 데에는 그녀의 삶도 한 몫 했다. 지금까지 황씨는 늘 경쟁의 중심에 있었다. 사교육 일번지인 강남에 살면서 늘 공부 경쟁에 시달렸다. 사회에 나와서도 경쟁에서 이기는 것이 정답이라고 여겨왔다.
“명문대를 나와서 늘 잘한다는 얘기를 들어왔지만, 행복하지 않은 순간이 많았어요. 공부에서 1등을 한다고 1등으로 행복한 게 아니라는 것을 살면서 깨달았지요. 그런데 저희 때나 지금이나 아이들은 늘 1등을 강요받고 있어요. 많은 부모가 명문대에 가는 것이 정답이 아님을 알지만, 다른 대안이 없어서 아이에게 똑같이 공부를 강요하기 때문이죠. 저희 집 근처인 대치동을 지나가다 보면 어깨에 메지도 못할 만큼 큰 가방을 들고 학원을 오가는 아이들을 자주 봐요.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자, 바뀌어야 할 현실이지요.”
내년 2월에 아이들이 한국에 돌아오면 이전에 다니던 사립이 아니라 공립학교로 전학을 보낼 예정이다. 사교육도 최소한으로만 활용할 계획이다.
“저는 직업을 네 번이나 바꿨어요. 연세대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스포츠조선 체육부 기자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죠. KBS 아나운서를 거쳐 한국언론진흥재단 선임연구원으로 활동하다 지금은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학창시절에 미래에 대한 고민 없이 무조건 공부만 매달리다 보니, 꽤 오랜 기간 적성을 놓고 고민했던 거죠. 저는 아이들이 저처럼 시행착오를 밟지 않았으면 해요. 그것이 어떤 분야든 진심으로 좋아하는 그 무언가를 찾아서 행복하게 즐겼으면 좋겠습니다. 아이의 행복보다 중요한 것은 없으니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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