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6.10.17 김국현 IT 칼럼니스트)
스마트폰·음성 인식 스피커 등 구글 상표 달고 출시된 하드웨어들
'스마트폰 이후' 세상 주도하려는 구글의 제조업 욕망 드러내
애플의 수익률도 10년 전 모험 덕… 미래는 시도하는 이에게 열려 있어
이달 초 '메이드 바이 구글(Made by Google)'이라며 구글 상표를 단 하드웨어가 여럿 발표됐다.
예전에 모토롤라도 인수했었고 LG나 화웨이에 의뢰해 넥서스라는 폰도 발매한 바 있지만, 구글이 이렇게 노골적으로
제조업의 욕망을 드러낸 건 처음이다. 스마트폰에, 음성인식 스피커에, 가상현실(VR)에, 미디어 기기까지 자신들의
인공지능 서비스를 예쁘게 담아낼 그릇을 세트로 만드는 듯했다. 뉴욕에는 팝업스토어까지 만들어진다.
구글 같은 소프트웨어 기업은 파트너들이 전체 시장의 파이를 키우도록 내버려두고 그 일부만 수익으로 확보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안드로이드 폰이 팔릴수록 구글 서비스와 소프트웨어가 퍼지게 되고, 그 판에서 광고를 파는 구글의 입지는
단단해진다. 제조업체 입장에서는 폰만 잘 만들면 구글이 운영체제를 챙겨주니 다 함께 성장할 수 있었다.
하지만 성장은 언젠가 멈추게 되어 있다. PC가 그랬었다. 이제 PC는 문서 작업만 무난히 하면 된다.
사람들의 관심이 스마트폰으로 넘어가자 그렇게 하나의 시대는 저물어 갔다.
4일(현지시각)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구글의 신제품 공개 행사에서 사브리나 엘리스 제품관리 총책임자가
픽셀폰의 색상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날 구글은 블랙과 블루, 실버 등 세 종류로 출시되는 최고급 사양의 픽셀폰 2종을
공개하며 삼성, 애플, LG 등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프리미엄폰 시장에 뛰어들었다. /AP 연합뉴스
PC의 윈도를 만들던 마이크로소프트는 당황했다. 윈도가 할 수 있는 일이 더 있었다.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4년 전 서피스라는 태블릿과 노트북을 직접 만들기 시작했다.
이달 말에는 아예 PC 본체도 발표할 것이라는 소문이다.
마이크로소프트도 게임기나 키보드·마우스는 만들었지만 델이나 HP 등 하드웨어 파트너들의 주력 사업인 PC는 건드리지
않았었다. 하지만 재미가 사라진 게 PC 시장이다. 스스로 그릇까지 만들어 음식을 내놓아야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진부해진 건 PC만이 아니다. 예전에는 LG나 삼성이 안드로이드 운영체제가 미처 제공해주지 않던 각종 기본 앱도
살갑게 독자 개발해 끼워줬지만, 요즘에는 안드로이드 순정(純正) 앱이 더 깔끔하다.
삼성 등이 통제받지 않고 벌이는 혁신이 구글에는 오히려 귀찮은 일이다.
마음대로 안드로이드를 건드려대니 정리가 되지 않아 업데이트만 힘들어진다.
이렇게 제각각으로 '파편화'된 폰에는 구글이 새로운 버전의 안드로이드를 출시해도 밀어넣기 힘들어진다.
안드로이드는 널리 퍼졌지만, 구글은 미래가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PC처럼 사람들의 관심이 떠나는 날, "사실은 할 수 있는 일이 더 있다"고 아쉬운 소리 하기는 싫었다.
윈도처럼 낡은 식당 취급받기 전에 미리 움직이고 싶다. 방법은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가 그랬듯 직접 보여주는 것뿐.
모든 자재를 직접 선별하고 최적화하여, 파트너의 튜닝 제품을 무색하게 하는 순정 제품을 멋지게 출시하려는 욕심.
또 하나의 시대가 막을 내리고 있다는 신호다.
삼성이 지금은 애플과 비교되고 있지만, 이대로라면 PC 제조업체처럼 재미없는 일만 남겨질 날도 머지않았다.
이 사실은 삼성도 알고 있기에, 독자적 운영체제의 꿈을 버리지 않는다.
하지만 PC가 마이크로소프트 세상인 채로 끝난 것처럼, 스마트폰은 애플과 구글 세상으로 끝이 나고 있다.
세상이 무난하고 평범해질 때 다른 세상을 제안하는 일.
그 설득력은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정교하게 결합해서 이뤄내는 종합적 체험에서 나왔다.
애플이 맛보고 있는 스마트폰 시장에서의 경이적 수익률은 10년 전 새로운 세상이 열릴 무렵 시도했던
그 순정 제품의 모험 덕이다.
스마트폰 이후 세상이 열리고 있다.
하지만 어떤 세상이 먼저인지는 구글도 잘 모르는지, 일단 있는 대로 쏟아 놓았다.
적어도 이 중 하나일 것이라는 양. 다만 아직은 전부 평범하고 무난하다.
이 기회의 세상은 아직은 누구에게나 공평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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