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産業·生産·資原

허무맹랑 가짜 뉴스, 우리도 당할 수 있다

바람아님 2016. 12. 11. 23:20
미디어오늘 2016.12.10 13:43

[김국현 칼럼] 중립이라는 비겁함… 미디어의 책임과 우리의 책임

 트럼프 당선에 당혹한 이들의 화살은 페이스북을 향했다. 특히 미국 언론은 단단히 뿔이 났는데 페이스북에 조직적으로 유통된 허위 뉴스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다는 것. 사실 페이스북 참여도나 활기 등 각종 SNS 지표는 트럼프가 클린턴을 압도하고 있었다. 외부의 인공지능이 트럼프 당선을 예견한 것도 비슷한 이유였으니 트럼프 압승의 징조를 페이스북은 알고 있었을 것이다.


SNS의 친구가 공유한 기사를 맹목적으로 신뢰하는 일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교황이 트럼프를 지지했다는 둥, 클린턴이 ISIS에 무기를 팔았다는 둥, 아니면 말고 식의 허무맹랑한 가짜 뉴스가 범람했다. 뉴스사이트가 광고판이 되고 활자의 권위는 사라진 시대, 피곤한 우리에게는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이고 이해하고 싶은 것만 들린다.


마케도니아의 어떤 십 대들은 비즈니스 찬스를 놓치지 않고 대놓고 가짜 뉴스 사이트를 만들어, 되는대로 트럼프 특집을 꾸렸다. 기사에 따라서는 수십만의 공유가 일어나고 월 500만 원씩 버는 친구도 생겼다. 미국 정치 소식에 붙은 구글 광고는 단가가 가장 높은 미국에서 클릭이 일어나니, 발칸반도의 소국에서는 아주 짭짤한 불로소득이었다. 문제는 제3세계 십 대의 한탕주의뿐이 아니었다. 심지어 페이스북으로부터 인증 마크도 받은 공식 사이트조차 허위 뉴스를 뱉어내고 있었다.


내부고발에 의하면 페이스북은 옥석을 가릴 수 있었으나 편향적으로 비치는 것을 두려워해 이를 포기했다. 중립이란 허울 아래 설령 허위 정보라도 그에 맞는 성향의 사용자가 원하면 전해 준다는 판단을 한 것. 워싱턴 포스트지는 허위 기사 배후에는 러시아에 의한 대미 흑색선전 공작이 있었다고 지적한다. 가치 판단이 없는 ‘중립’의 공간이기에 얼마든지 벌어질 수 있는 일이다.

페이스북은 자신들은 미디어가 아니라 이야기한다. 이는 어디서 많이 듣던 이야기다. “포털은 미디어인가?” 우리에게 익숙한 질문이다. 소셜미디어도 포털도 종래의 웹과는 달라 가만히 있으면 알아서 정보를 취사선택해 배달해 준다. 그 선택의 주체가 편집자인지, 친구인지, 알고리즘인지의 차이는 있겠지만, 결국 인간이 만든 블랙박스다. 확보한 사용자가 떠나가지 않기 위한 먹잇감으로서 뉴스가 조달·유통된다는 점은 같다.


트래픽 배금주의다. 이 구조의 재료가 된 언론은 팩트보다는 선정적 낚시로 ‘어뷰징’하고 한 푼이라도 벌기 위해 각종 혐오스러운 광고를 덕지덕지 붙인다. 질이 낮아져 문턱이 낮아진 언론 사이에 새로운 유사 언론이 세련되게 파고든다. 소위 큐레이션 미디어들이다.


일본의 상장 인터넷 기업 DeNA가 최근 물의를 일으켜 시끄럽다. 이 게임업체 산하에는 10여 사이트가 있는데, 속칭 알바 ‘에디터’들에게 어떻게 하면 들키지 않고 다른 사이트의 내용을 베낄 수 있는지, 표현만 바꿔서 내용을 퍼올 수 있는지, 조직적으로 지시했음이 내부고발로 밝혀지게 된 것. 이런 식으로 급조되어 제대로 될 리 없는 의료 정보가 검색 결과 상단을 차지하면서 사회적 문제가 불거졌다. 게다가 ‘자살’이라든가 ‘죽고 싶다’와 같은 키워드에까지 검색 최적화를 한 후 배려 없는 내용으로 광고를 유치했다. 오로지 ‘바이럴’될 수만 있다면 트래픽만 끌 수 있다면 무엇이든 괜찮다는 ‘그로스 해킹’ 지상주의의 일면이 드러난 이 사건은 이들 사이트들의 전면 비공개 사태로 마무리되고 만다.


무책임한 정보의 대량 생산은 성장과 실적에 목마른 인터넷 기업이 빠지기 쉬운 덫이었다. 그리고 그 무책임을 가장 그럴듯하게 표현하는 단어가 바로 중립이다.

폰과 브라우저의 첫 화면을 장식하는 앱과 사이트들. 분명 언론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언론보다 큰 역할을 한다. 그렇지만 사실확인에서 의제설정까지 언론의 본분에 대한 책임엔 눈을 감고, 그 본분에 대한 대가였던 광고와 관심(어텐션)만 가져간다.


영화 <스포트라이트>를 보고 그저 영화 같은 일이라며 부러워했던 기억이 난다. 박근혜-최순실 사태 이후 오늘의 시민을 일어나게 한 것은 결국 기성 언론들의 탐사보도 덕이었다. 언론은 살아 있었다. 그동안 죽어 있었던 것은 옥석을 가리고 전달해야 할 이들의 역할이었다. 인터넷 기업, 그리고 당사자로서의 인터넷 사용자 우리 모두 마찬가지다.


일본의 큐레이션 사건은 독자들의 적극적인 이의 제기로 초반에 수습되어 가고 있다. 미국도 페이스북과 구글이 허위 뉴스에 더 적극적으로 대응하기로 한다는 선언을 이끌어냈다. 인터넷의 자정작용이다.

하지만 준동하는 댓글 부대와 허위 정보의 선동은 한국이 IT 강국답게 앞선다. 노골적이고 티가 나도 왜 근절되지 않을까. 이를 목격하고도 피곤하다며 침묵한 우리들의 책임도 없지 않다.


김국현 IT 칼럼니스트·에디토이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