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6.12.22 허윤희 기자)
신희권 서울시립대 교수 '한양도성, 서울을 흐르다' 펴내
한양 도성 역사·숨은 가치부터 복원 대한 날카로운 시각 담아
"동대문 이간수문은 잘못된 복원… 뿌리만 발굴해 현대 석재 쌓아 그냥 21세기 성벽이 돼버려"
'최대 규모, 최다 인력 동원, 최단 공기(工期)의 3관왕.'
1396년 조선 도읍을 지키는 도성으로 세워진 한양 도성은 국내 축성사(史)에서 경이로운 기록을 갖고 있다.
먼저 전체 둘레 18.63㎞에 이르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성(城)이다.
태조 때 1·2차 축성에 19만7470명, 세종 때 고쳐 쌓을 때는 한 달간 32만2400명이 투입돼(합하면 50만명 이상)
단일 성곽 중 가장 많은 장정이 동원됐다.
반면 공사 기간은 가장 짧았다. 1·2차 공사에 걸린 기간을 다 합해도 98일밖에 안 걸렸다.
고구려 평양성이 35년, 남한산성이 2년 걸린 데 비하면 놀라운 속도다.
"그만큼 최다 백성을 동원해 국가적 총력을 기울여 쌓은 거죠.
3관왕 기록보다 더 가치 있는 건 도시 성벽으로서 지닌 긴 역사입니다.
한양 도성이라는 600년 넘는 문화유산을 갖고 있다는 건 축복이고 자랑거리예요.
세계적 대도시 중에서 도시의 외곽을 둘러싼 성벽이 이렇게 장구한 기간 유지된 건 서울이 유일합니다.
로마에도 아테네에도 없어요."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옆 복원된 이간수문을 가리키며
신희권 교수는 “과도한 복원을 해서 안타까운 경우”라고 했다. /박상훈 기자
신희권(46) 서울시립대 국사학과 교수가 펼치는 한양 도성 예찬론이다.
최근 펴낸 '한양도성, 서울을 흐르다'(북촌)에서 그는 한양 도성의 역사와 스토리, 숨은 가치, 고고학자로서 지닌
발굴 경험과 복원에 대한 날카로운 시각까지 풀어냈다.
한양 도성의 내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심의를 앞두고 국내외 관심이 커지는 시점에서 반가운 책이다.
21일 서울 동대문 이간수문 앞에서 만난 그는 "주말이면 수많은 시민이 한양 도성 따라 산책하는데
그분들이 지나는 곳이 어떤 역사적 의미가 있는지 정확히 알리고 싶었다"고 했다.
백악산에서 시작해 낙산을 거쳐 남산 지나 인왕산으로 이어지는
순성(巡城·성곽을 따라 걸으면서 도성 안팎의 풍경을 구경함)구간을 따라 이야기가 펼쳐진다.
얼마 전까지 한양 도성은 '서울 성곽'이라 했다.
문화재청이 전국 문화재 명칭을 바꾸면서 2011년 '서울 한양 도성'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그는 "성곽(城郭)이란 왕이 거하는 궁성의 성(城)과 백성을 보호하기 위한 외곽 성의 곽(郭)을 합쳐 부르는 말인데
한양을 둘러싼 성벽을 서울 성곽이라 부르는 건 맞지 않았다.
굳이 쓴다면 '서울 곽' 또는 '서울 곽성'이 정확하다"며 "한양 도성으로 이름을 바꾼 건 잘한 일"이라고 했다.
2년 전까지 그는 문화재청 학예연구관이었다.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졸업과 동시에 국립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로 발을 들인 후 20년간 공직 생활을 했다.
10년 넘게 풍납토성을 발굴한 백제 전문가이면서 2007년과 2008년 각각 경복궁 광화문과 한양 도성의 정문인
숭례문 발굴을 이끌었으니 한양 도성과도 인연이 깊다.
한양 도성은 일제강점기와 6·25전쟁 등을 거치면서 일부 훼손되고 멸실되는 수난을 겪었다.
전체 구간 18.63㎞ 중 현재 약 13㎞의 성벽이 남아 있다.
그는 "한양 도성 복원을 보면 우리나라 문화재 보존의 문제점이 그대로 녹아 있다"고 지적했다.
한양 도성은 태조 대에 축조된 후 세종, 숙종, 영조 대에 걸쳐 수차례 수축·정비돼 구간별로 여러 시간대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는데 최근에 복원된 성벽들은 그런 시간성을 전혀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
복원에 사용된 석재가 기존의 성돌과 전혀 어울리지 않고 이질감을 드러내는 것도 문제다.
동대문 이간수문(二間水門·물이 흘러가는 통로가 2개인 수문)이 대표적 사례.
"동대문운동장 공원화 사업을 추진하면서 3년간 발굴 조사를 했더니 멸실된 줄 알았던 이간수문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지요.
이거야말로 진짜 고대 유적이구나 하고 감동했는데 나중에 복원된 이간수문을 보고 배신감마저 들었습니다.
뿌리만 1~2단 발굴해놓고 상부까지 현대 석재로 복원했으니 이건 그냥 21세기 성벽이 돼버린 거죠."
그는 "제대로 복원할 수 없다면 원상태 그대로 남겨놓고 잘 관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했다.
| 한양도성, 서울을 흐르다 저자 신희권/ 북촌/ 2016.12.20/ 페이지 35 |
책소개
백악산에서 시작해 낙산을 거쳐 남산을 지나 인왕산에서 순성의 마침표를 찍는 이 책은, 성곽길 곳곳에 담겨 있는 한양도성의 숨은 가치를 풀어냈다. 저자는 순성 구간에 맞춰 이 책을 총 6부 24장으로 풀어냈는데, 각 부마다 한 꼭지씩 할애하여 한양도성의 특별함을 발견할 수 있도록 했다. 한양도성이 탄생하게 된 비밀을 엿볼 수 있는 꼭지는 물론이고, 성벽의 글씨에서 확인하는 책임시공의 흔적, 유적의 보존과 활용 문제에 이르기까지 저자가 한양도성을 연구하며 정리한 핵심적인 내용들을 이 책에 꽉꽉 눌러 담았다. 여기에 한양도성 각 구간의 촬영 명소들과 반드시 만나보아야 할 요소들을 수백 장의 사진으로 함께 담아 읽는 즐거움에 보는 즐거움을 더했다.
[인터넷 교보문고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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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저자 신희권은 서울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를 졸업한 뒤 동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중국사회과학원에서 고고학 전공으로 역사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1995년부터 국립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로 공직에 발을 들인 후 학예연구관을 거쳐 문화재청 창덕궁관리소장과 국립고궁박물관 유물과학과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는 서울시립대학교 국사학과에서 후학들을 양성하고 있다.
1997년부터는 백제의 왕성으로 알려진 풍납토성 발굴조사를 주도하며 백제의 국가 형성과 도성에 관해 연구하고 있다. 2007년과 2008년에 경복궁 광화문과 숭례문 발굴의 책임을 맡으면서, 조선시대 궁궐과 도성으로 연구 영역을 넓혀 나가고 있으며 현재 문화재청 및 서울시 문화재전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 《국가 형성의 고고학》(공저), 《성곽조사 방법론》(공저), 《금석문으로 백제를 읽다》(공저)가 있고, 논문으로는 〈풍납토성(風納土城) 발굴조사를 통한 하남위례성(河南慰禮城) 고찰〉, 〈백제 한성시대 도성제도에 관한 일고찰 : 양궁성제도(兩宮城制度)를 중심으로〉, 〈한양도성 축조기법 연구〉 등이 있다.
[인터넷 교보문고 제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