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들에게는 뛰어난 전략가이자, 기술 혁신에 탁월한 재능을 가진 이순신이 있었다.”
영국의 버나드 몽고메리 장군은 자신의 저서인 ‘전쟁의 역사’(A History of Warfare)에서 이순신 장군에 대해 “적의 어떠한 공격에도 대항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전선(戰船)을 발명했다”며 이같이 소개했다.
이순신의 명성은 주로 아시아 지역을 중심으로 알려져 있지만, 해군에 대한 관심이 높은 영국과 유럽에서도 해군 역사를 다루며 이순신을 언급한 경우가 많다. 지난 18일 서울시청에서 열린 국제학술세미나 ‘세계 속의 이순신’에서 이언 바우어스(Ian Bowers) 노르웨이 국방연구소 교수는 영국에서 발간된 저서와 논문 등을 통해 유럽인들이 이순신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소개했다.
이순신 장군의 초상화. |
300∼350년 전의 것으로 추정되는 거북선 고서화. 거북선으로 보이는 군선 4척과 배 위에서 회의 중인 장수, 병사들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
임진왜란에서 이순신에 의해 패한 일본에서도 이순신의 업적에 대해서는 높게 평가하고 있다. 이날 세미나에 참석한 이노우에 야스시 일본 방위대 교수는 “이순신이 에도시대 중기에는 ‘충성’이라는 덕목의 체현자로, 메이지시대에는 ‘해전 전략가’로 평가받았다”고 설명했다. 일본의 해군 장교들은 이순신의 해군 전략을 연구하고 있다고 전하며,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실패가 약한 수군력 때문이라는 교훈을 얻었다고 덧붙였다. 이런 영향으로 1904년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의 도고 헤이하치로 제독은 자신의 승리가 “넬슨한테는 비교될 수 있어도 이순신한테는 비교될 수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중국에서 이순신은 조선의 저명한 군사가로 통한다. 마오징 중국 장시성 인민출판사 편집장은 “명나라는 임진왜란 당시 조선에 지원군을 파견했다”며 “당시 이순신은 명나라 군사들에게 강한 인상을 줬다”고 전했다. 일제 때에는 “(조선과 중국이) 공통적으로 왜를 대적한다는 측면에서 이순신과 거북선을 소개한 문장이 적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후 1950년대 6·25전쟁이 발발하고 북한과 중국이 남한과 미국에 맞서 전쟁을 치르면서, 중국에서 이순신이 해양 외세에 대항하는 인물로 그려졌다고 소개했다.
권구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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