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7.06.14 정경원 세종대 석좌교수·디자인이노베이션)
"아, 바로 이 맛이야!"
봄비가 촉촉이 내리는 공원에서 바비큐 파티를 하던 중 숯불에 구운 토스트를 한입 베어 문 데라오 겐(Terao Gen)은
절로 탄성을 질렀다. 1990년 초반 스페인의 론다(Ronda)에서 먹어보고 늘 잊지 못했던,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토스트 맛이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일본 유수의 디자인 회사 발뮤다(Balmuda) 대표이지만 겐은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1년 동안 유럽 전역을 여행하며
굴곡 많은 사춘기를 보냈었다.
겐은 곧바로 바삭하면서도 촉촉한 맛을 재현해주는 토스터 개발에 집중했으나 온갖 노력이 다 허사였다.
발뮤다 토스터와 전용 컵, 선택 가능한 색상: 흰색, 회색, 검정, 규격: 357×321×209mm, 2014년 출시.
많은 시행착오 끝에 그 토스트를 먹던 날에 비가 내렸다는 기억을 되살려
빵을 구울 때 적정한 습기를 유지하는 방법을 강구했다.
도쿄의 한 유명 베이커리의 협조로 스팀 제어 전기 가마에서 빵을 구워가며 수분을 적절히 공급하는 실험을 이어갔다.
디자인팀에서 토스터의 프로토타입(작동하는 모형)을 만들고, 기술팀에서는 내부 온도를 제어하는 소프트웨어를
디자인하는 작업을 계속한 끝에 원하던 맛을 완전히 재현해냈다.
자체 브랜드로 생산하는 발뮤다 토스터의 특징은 간결한 형태와 사용법을 직관적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전면의 손잡이를 당기면 문이 열리며 작은 물통이 드러난다.
1초마다 내부 온도를 최적의 상태로 제어하는 알고리즘으로 데워진 수증기는 빵 표면에 얇은 수막을 형성하여
겉은 타지 않고 속은 촉촉하게 해준다.
전용 컵(5㏄)으로 물을 붓고 음식에 따라 7가지 모드 중 하나를 선택하면 자동으로 조리된다.
식빵, 토핑 빵, 바게트, 크루아상 전용 모드 외에 그라탱, 떡, 쿠키 등의 조리를 위해 세 가지(160·200·250℃) 온도로
고정된 클래식 모드가 있다. 사춘기 시절 추억 속의 맛을 되살려내려는 겐의 노력 덕분에 누구나 바삭하고 촉촉한
토스트의 맛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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