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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산탐구]양천향교

바람아님 2013. 9. 27. 00:02

 

 

 

 

 향교는 고려시대를 비롯하여조선시대에 계승된 지방 교육기관으로서 국립교육기관이다.
고려시대 처음 생겼을때에는 향학이라 불렀다. 향교는 지방의 문묘와 그에 속한 학교로 구성된다.

 

조선시대에는 1392년(태조1)에 여러 도의 안찰사에 명하여학교의 흥폐로서 지방관고과의 법으로 삼고 크게

교학의 쇄신을 꾀하였다. 여기에서 부. 목.군. 현에 각각 1교씩 설립하고 점차 전국에 이르게 되었다.
향교에는 문묘, 명륜당및 중국, 한국의 선철, 선현을 제사하는 동서양무가 있다.
동서양재는 명륜당의 전면에 있으며 동재에는 양반, 서재에는 서류를 두고 보통 내외 양사로 갈라진다.
내사에 있는자는 내사생이라 하고 외사에는 내사생을 뽑기위한 증광생을 두었다.

 

유생의 수는 부.목에 90인, 도호부에 70인, 군에 50인, 현에 30인으로 정하고 직원으로는 교수, 훈도각1인,

소군에는 훈도만을 두었으며 또한 독서와 일과를 수령이 매월 관찰사에 보고하여 우수한 교관에게는

호역을 양감하여 주었다. 수학한 경전은 시경, 서경, 주역,예기, 춘추의 오경과 논어, 맹자, 중용, 대학의 사서이다.

여기에서 수학한후 1차 과거에 합격자는 생원, 진사의 칭호를 받고 성균관에 가게되며 다시 문과시에 응하여

고급관위에 으르는 자격을 얻었다.
1894년(고종31)말에 과거제도의 폐지와 함께 향교는 완전히 이름만 남아 문묘를 향사할 따름이다.

 

가양동 궁산에 있는 양천향교는 태종11년(서기 1411)에 유학을 토대로한 교육기관이 건립되었다.
대성전에는 공자님을 비롯한 4성위와 송조4현, 우리나라의 18현의 위패를 봉인하거 음력2월과 8월 상정일에

석전을 봉행하며 문묘기능을 하며 유학을 연구 강론하는 지방 교육기관으로서의 역활을 하였다.
년중 제일 큰 행사인 서전대재를 지방수령이 석전제를 올리는 것을 전통으로 본 향교는 강서구청장이 초헌관으로

석전제를 올린다. 구한말 갑오개혁(1894년)으로 과거제도가 폐지됨에 따라교육기관으로서의 기능은 상실되고

문묘기능만 남았다. 양천향교는 서울시 문화재 기념물 제8호로 지정되어 있다.

 

양천향교재단 사무실

 

  홍살문

 

양천향교의 연혁

양천향교는 경기도 김포군 양동면 가양리에 소재 하였는데 양동면이 행정구역 변경으로 서울시에 편입

되므로  서울시 소재로 변경 되었다.

 

유예당

유예당은 지역민들을 위한 문화행사와 민속놀이 공연등을 목적으로 2007년 신축 하였다.

 

  유예당 놀이마당

 

 

 

  담장이 덩쿨에 뒤덮인 해우소도 예술이다

 

 외삼문

외삼문 서문으로 본 명륜당<

 

  명륜당과 동재,서재

 

명륜당 현판

 

 명륜당

 

 명륜당

 

명륜당옆 담장

 

 

 

 

 

  명륜당은 온돌형식으로 명륜당굴뚝

 

  내삼문

문묘의례시에만 출입하는 문으로 평상시에는 닫쳐있다

 

  대성전 서쪽 담장

 

  대성전 동쪽 담장

 

  담넘어로 본 대성전 일부

 

  전사청

서전때 희생(제수)을 준비하는곳

 

향교에 공적이 있는 사람들(주로 지방수령)의 공적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