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디자인·건축

삭막한 工團에 생기 불어넣은 '빨간 벽돌'

바람아님 2017. 8. 29. 07:14

(조선일보 2017.08.29 안산=채민기 기자)


반월공단 '선도전기' 공장 개축… 곳곳에 쉼터 두고 옥상엔 정원

실내건축가 최시영 디자인 맡아'

獨 레드닷어워드' 본상 수상


최시영씨최시영씨


공단(工團)에 왔음을 실감케 하는 건 후각이었다. 

장대비가 내린 지난 24일, 창문을 닫고 운전해도 차 안으로 매캐한 냄새가 스며들었다. 

창밖을 살펴보자 회색빛 샌드위치 패널을 둘러친 공장들이 끝없이 이어져 있었다. 

이곳은 경기 안산시 반월공단이다.


냄새와 공기는 공단 내 전력 설비 제조업체인 선도전기 전동준(46) 대표의 고민거리이기도 했다. 

공장 직원들이 근무 환경의 열악함을 호소했고, 직원을 뽑는 데도 걸림돌이 됐다. 구내식당 식단을 바꾸는 등 복지를 

개선해 봤지만 결론은 역시 공기였다. 전 대표는 "수도권에서 오염 심한 업종이 모인 공단이 바로 이곳"이라고 했다.


2015년 완공된 선도전기 공장 개축(改築)은 이렇게 시작됐다. 

공장 바로 옆 '관리동' 자리에 지하 1층, 지상 5층 건물을 새로 짓는 프로젝트였다. 

공장 2층을 쓰던 사무·연구 인력이 옮겨오고 협력사와 회의할 수 있는 공간도 마련했다. 

실내 공기 정화 장치를 늘리고, 직원들이 일터를 집처럼 느끼도록 아늑한 공간으로 만들었다. 

최고급 주상복합 건물 타워팰리스의 공동 설계자로 이름난 실내건축가 최시영(61·리빙엑시스 대표)씨가 디자인을 맡았다.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외장재로 빨간 벽돌을 썼다는 점이다. 국내 공장 지대에서 보기 힘든 재료다. 

최시영 대표는 "세월의 흔적을 머금을 수 있다는 장점도 있고, 가까운 바다에서 불어오는 해풍에 쉽게 부식되거나 

변색되지 않는 소재"라고 말했다. 실내 곳곳에서도 벽돌 벽이 그대로 보인다. 

외장재의 따스한 느낌을 건물 안으로 끌어들여 이용자들도 느끼도록 한 배려다.



빨간 벽돌로 지은 선도전기 건물은 규모는 크지 않지만 주변 공장 사이에서 확실히 도드라진다(큰 사진). 

어두워지면 조명이 은은하게 들어와 공단에서 보기 힘든 풍경을 연출한다(작은 사진). /리빙엑시스


최 대표는 "공간 곳곳에 켜를 뒀다"고 말했다. 외관은 사각형이지만 자로 잰 듯 반듯반듯하지는 않다. 

블록 장난감을 조금씩 어긋나게 쌓은 듯 곳곳에 틈과 요철이 있다. 이런 곳이 일종의 발코니처럼 쉼표 역할을 한다. 

차 마시기 좋은 테이블을 놓은 곳도 있고, 나무를 심어 공단에선 보기 드문 녹색을 느끼게 한 곳도 있다. 

"직원들이 모여서 잠시 숨 돌릴 수 있는 공간을 둔 것"이라고 했다.


공장 건물에서는 버려진 곳이나 마찬가지였던 옥상도 정원으로 만들었다. 

한쪽에 예닐곱명이 둘러앉을 수 있는 테이블을 두고 온실처럼 유리로 둘러싸 아늑한 느낌을 줬다. 

곳곳에 용설란과의 관목인 '실유카'를 심었다. 

최 대표는 "5월쯤에 화려하게 꽃이 피고 겨울에도 푸른빛을 유지하는 식물"이라고 했다. 

옥상에 오르면 동쪽으로 야트막한 산이 보인다. 주변에서 거의 유일하게 녹색이 눈에 들어오는 전망이다.


지하에는 공장 근무자들도 함께 사용하는 직원 식당을 큼직하게 만들고 햇빛이 잘 들도록 선큰 가든(지하로 터진 공간에 

설치한 정원)을 꾸몄다. 지반이 무른 매립지여서 지하를 파는 데만 6개월이 걸렸지만 직원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공간인 만큼 욕심을 냈다고 한다.


공단에서는 큰 공장이 곧 랜드마크다. 반월공단의 도로 이정표에는 'LS오토모티브 사거리' '오스람 삼거리' 같은 이름이 있다.

선도전기는 조금 다른 의미의 랜드마크로 자리 잡는 중이다. 

전 대표는 "'빨간 벽돌 건물'이라고 하면 바로 찾아오는 택시 기사들이 많다"고 했다.


이 건물이 특히 돋보이는 건 해가 지면서부터다. 외부에 경관 조명을 하지 않는 보통의 공장과 달리 어두워진 뒤에도 

조명이 벽돌 벽을 은은하게 비춘다. 이 건물은 이달 중순 공장 건물로는 이례적으로 유명 국제 디자인상인 독일 

레드닷어워드 본상(커뮤니케이션 디자인 부문)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