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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위험한 직접민주주의觀

바람아님 2017. 9. 19. 09:37
문화일보 2017.09.18. 12:00


비(非)정부기구(NGO)인 시민단체 상당수가 권력의 오·남용을 감시·견제하는 본연의 역할은커녕 스스로 권력화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 것은 어제오늘이 아니다. 간부들의 고위 공직이나 정치권 진출로 활동의 순수성을 의심받는 일은 다반사다. 그런 NGO의 권력화가 문재인 정부 들어 더 심화하는 것으로 보인다. 사실상 정부기구(GO)나 다름없는 위상을 갖기도 하고, 주요 정책과 인사(人事)를 좌지우지하기도 한다.


입법·사법·행정부와 언론에 이어 제5부(府)로도 일컬어지는 NGO는 민주주의 체제를 떠받치는 기둥 중의 하나여서 그 역할의 중요성은 더 말할 나위 없다. 권력을 지향해서는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없는 것이 본질적 속성이다. 정치·행정·경제 등 모든 분야에서 해당 권력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해야 건전성을 잃지 않는다. 허울뿐인 민간기구가 되는 순간, 존재 이유조차 없어진다. 정부도 NGO의 권력화를 부추겨선 안 된다. 적대시하지도, 들러리로 삼지도 말아야 한다. 민간이 자발적으로 구성해 활동해온 기존 시민단체에 대해서만 그래야 하는 게 아니다. 정책을 결정·조정하기 위해 정부가 민간인들로 위원회 형식의 공적 조직을 만드는 것도 전문성과 보편 타당성 등을 더 보완·확인하기 위해 불가피한 경우로 한정해야 한다. 자문기구 형식으로 만들었더라도, 말 그대로 자문에 그치게 해야 한다.


그런데도 문 정부는 국가 미래가 걸린 정책 결정까지 민간인들로 구성한 한시적 공적 기구에, 그것도 비전문가들에게 맡기기도 한다. 조(兆) 단위 예산이 투입돼 공정률 28%가 넘은 신고리 원자력발전소 5·6호기 공사를 정부가 일단 중단해 놓고 재개 여부를 비전문가 민간인들인 시민대표참여단이 사실상 결정하게 했다. 정원 500명 중 478명이 지난 16일 최종 참석해 오리엔테이션을 받고, ‘공사 중단 또는 재개 결정을 내리는 게 얼마나 중요하다고 생각하느냐’ 등의 설문에 응답하며 공론화 작업을 본격화했다고 한다. 


이들의 결론을 정부가 수용·결정하는 형식을 갖추도록 전달할 공론화위원회 역시 민간인들이다. 그 위원장은 시민참여단을 ‘현자(賢者)’로 떠받들며 “현자에게는 고정관념이 없다. 열린 마음으로 진리의 길을 찾아주셔야 한다”고 당부했지만, ‘진리의 길’을 그렇게 해서 찾는다는 것은 소가 웃을 일이다. 시민단체 인사들이 포함된 경찰개혁위원회가 교통 혼잡을 이유로는 집회·시위를 금지하지 못하게 하며 ‘사소한 위법’은 용인하라고 한 권고를 이철성 경찰청장이 전면 수용한 것도 정부기관보다 시민단체가 더 위세를 떨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또 다른 예다. 그렇잖다면 그 위원회가 경찰권에 대한 시민 통제기구를 설치하라는 추가 권고안까지 내고, 경찰 일선에선 “현실과 동떨어진 시민단체식(式) 사고”라며 속이 더 부글부글 끓었을 리도 없다.


이런 현상의 정점(頂點)엔 직접민주주의에 대한 문 대통령의 빗나간 인식이 자리 잡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자발적 조직이든, 정부 주도로 만든 조직이든 국민 의사가 더 직접적으로 나타나는 거울은 국회도 언론도 아닌 시민단체라고 여기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취임 100일을 맞아 지난달 20일 ‘국민인수위 국민보고대회’에서 이렇게도 말했다. “국민은 주권자로서 평소에 정치를 그냥 구경만 하다가 선거 때 한 표를 행사하는 간접민주주의로는 만족하지 못한다. 그래서 촛불집회처럼 직접 촛불을 들어 정치적 의사표시를 하고, 댓글을 통해 제안도 한다. 국민이 직접민주주의를 요구하고 있다.” 대의(代議)민주주의와 그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야 할 직접민주주의적 요소의 본말(本末)을 뒤집어 인식하는 셈이다.


게다가 국민 일반은 광장의 시위와 인터넷 댓글 등을 통한 직접적 의사 표현을 더 늘려가고 싶어 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대의민주주의를 제대로 실천해, 시위 등이 빈발·난무하지 않도록 여·야(與野) 모두 제발 정신 차리라는 요구가 민심(民心) 아니겠는가. 비정부기구가 정부기구보다 더 힘을 발휘하고, 공권력이 시위대에 위축되고, 대의민주주의는 형해화(形骸化)하면서 시위와 댓글 등을 부추겨 직접민주주의에 기대어 국정을 운영하는 국가가 정상(正常)일 순 없다. 그런 사회는 극심한 혼란·혼돈의 난장판일 뿐이다. 민심을 오독(誤讀)한 위험한 직접민주주의관(觀)으로 국정을 이끌어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