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아트칼럼

[우정아의 아트 스토리] [75] 말이 정말 저렇게 뛸까?

바람아님 2013. 10. 12. 22:07

(출처-조선일보 2012.08.26 우정아 포스텍 교수·서양미술사)


무거운 먹구름 아래 바람을 가르며 네 마리의 경주마가 질주하고 있다. 기수들이 채찍을 휘둘러 속력을 높이는 그 긴박한 순간에 마치 정지 버튼을 누른 듯이 허공 중에 떠있는 말들의 긴장된 근육과 희번덕거리는 눈동자가 뚜렷하게 묘사된 이 그림은 프랑스의 낭만주의 화가 테오도르 제리코(Theodore Gericault·1791~1824)의 '엡솜 더비 경마장'이다. 엡솜 더비는 영국 남부의 엡솜에서 열리는 경마 대회다. 올해 재위 60주년을 맞이한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이 공식 축하 일정으로 처음 찾은 곳이 바로 엡솜 더비일 정도로 이 대회는 영국 경마의 전통과 권위를 상징한다.

테오도르 제리코 '엡솜 더비 경마장' - 1821년, 캔버스에 유채, 92×122㎝, 파리 루브르박물관 소장.

제리코는 화가로서 교육을 받기 시작할 때부터 말에 매료되었다. 프랑스 왕실에서 일하면서 국왕의 마구간에 드나들었던 그는 뛰어난 경주마들의 골격과 근육, 그들이 만들어내는 거칠고도 아름다운 움직임을 면밀하게 연구하고 화면에 옮겨 담아 명성을 얻었다. 이 그림은 그가 잠시 영국에 방문한 동안 한 경주마 상인의 주문을 받고 그린 것이다.

그러나 사실 이것은 '틀린 그림'이다. 말은 이처럼 네 발을 앞뒤로 활짝 펴고 날아오르지 않는다. 전력 질주를 할 때도 늘 발굽 하나는 바닥을 향해 있고, 네 발굽이 모두 바닥에서 떨어져 허공으로 튀어 오르는 순간에는 다리가 전부 안으로 오므라들지, 밖으로 펴지지 않는다. 나는 듯한 제리코의 경주마는 '사실'이 아니라 단지 질주의 '느낌'이었을 뿐이다. 맨눈으로 확인할 길이 없는 이러한 사실은 이 그림이 완성되고 50여 년이 지난 후, 한 사진가가 달리는 말의 연속 동작을 카메라로 잡아내고서야 밝혀졌다. 새로운 기계 덕분에 현대인은 과거의 인류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보고 있는 것이다. 



실제 발의 위치